세월의 흔적
세월의 흔적
  • 신상균
  • 승인 2021.11.18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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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에는 6평짜리 조립식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부임했을 때 사택 옆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보일러실은 얼어서 쓸수가 없었고, 겉모양은 먼지와 거미줄로 흉가를 연상케 했습니다. 사택 문을 나올 때마다 눈에 보이는 조립식 건물을 보면서 그곳에 주차장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조립식 건물을 사택 슬라브 위로 옮겨버리고, 그 자리에 주차장을 만들었습니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교회 공간이 부족하게 되었고, 그 때 사택 슬라브에 있던 조립식 건물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도배를 하고 장판을 깔아 예쁘게 꾸며서 재무부실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사택에 누수가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슬라브 위에 지붕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또 조립식 건물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없애자니 아깝고, 있으면 가로거칠 것 같고, 그래서 이번에는 조립식 건물을 교회 주차장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마침 교회 주차장에 있던 건물을 철거하면서 교회 주차장이 너무 썰렁했는데, 그곳에 가져다 놓으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크레인을 불러 조립식 건물을 붙잡아 매었습니다. 서커스를 하는 것처럼 높이 매달아 드디어 교회 주차장에 내려 놓았습니다. 하늘 높이 올라가 줄을 타던 조립식 건물은 몸이 뒤틀려 도배지가 찢어지고 창문도 삐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큰 문제가 없기에 계속 교회 재무실로 사용했습니다.

지난 8월 그동안 임대하여 쓰던 주차장 주인이 부지를 돌려 달라고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주차장을 넓히려고 보니 교회 주차장에 놓여 있는 조립식 건물을 옮기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제 사택 앞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나서 문을 열어 보았습니다. 왼쪽 지붕 밑으로 물이 센 흔적이 있었습니다. 왼쪽 구석 밑으로 복사기에서 묻어 나온 토너로 인해 벽지가 까맣게 배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말했습니다. “참 고생 많았다. 그리고 고맙다.”

조립식 건물 참 수난이 많습니다. 자리가 필요할 때마다 자기 자리를 내 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또 가져다 썼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조립식 건물을 옮길 때마다 교회는 부흥했습니다. 인원이 늘어났고, 시설이 확충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조립식 건물은 요긴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았지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었습니다.

수요예배가 끝나고 나오는데 93세 되시는 원로장로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목사님 저게 뭐지요?”
“네 그것 예전에 주차장에 있던 건물이예요”
“아! 그렇군요.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이리저리 많이 옮겨다니네요.”

조립식 건물을 보면서 지나 온 세월이 느껴집니다. 누렇게 바랜 벽지처럼 교회와 함께 살아온 세월. 비록 낡았지만 그래도 요긴한 조립식 건물처럼, 교회에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온 세월, 상황에 따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교회를 지키는 건물처럼 교회를 지켜온 세월,

그래서 어른들이 옛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조립식 건물을 옮겨 놓으면서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저 조립식 건물을 없애야겠지,”

그런데, 그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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