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낙동강 전투와 같은 국가 비상 긴급 기도회
영적 낙동강 전투와 같은 국가 비상 긴급 기도회
  • 민돈원
  • 승인 2021.11.16 0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워싱턴 올림피아 국립공원에는 6.25 한국전쟁에서 희생한 16개국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얼을 기린 비문들이 새겨져 있다. 그 내용 중에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희생없이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다. 그러기에 대한민국을 사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이어졌던가? 우리 아군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군을 비롯한 16개 UN 참전국들의 고귀한 희생의 피가 이 땅을 붉게 물들였다. 이렇게 고귀한 희생의 댓가를 치르고 자유민주주의의 숭고한 가치를 지켜온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지나온 70-80년대 학생운동권 최선봉에서 투쟁했던 자들이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등에 업고 정권을 거머쥔 게 결국 오늘의 이런 형국을 만들고자 함이었는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고 개탄의 아우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특히 지난 5년간 이념과 세대간의 적대감 조장, 이로 인한 국론 분열은 심화되어 가는 형국이다. 예컨대 이들은 정치계를 비롯, 입법, 사법, 행정, 교육, 국방, 외교, 통일, 문화예술계, 언론, 방송, 심지어 기독교계까지 이르러 이 나라 모든 주요 요직을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정부 최고요직에 배치된 진보세력을 중심으로 온갖 악법 등을 제정, 발의하여 자유민주주의를 다수당의 횡포로 더욱 세력화해 가고 있다.

이런 식으로 국가체제가 좌 편향적으로 기울어가는 어느새 이미 지금 뼈아프게 경험하고 있듯이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모름지기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기까지 이 땅에는 수많은 초기 외국 선교사들을 비롯한 한국인들의 순교의 피가 흘린 땅이 아니던가? 그 피로 세워진 자랑스런 한국교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권이 지난 코로나 정국 1년 10개월 동안 한국교회에 대한 방역 초기부터 교회가 마치 확진 온상지처럼 연일 언론은 악의적 보도에 여념이 없었다. 이에 교회는 그들의 각본대로 여지없이 국민의 지탄대상으로 지목되어 원성을 사게 하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심지어 교회 자체 내 총질로 이어져 한국교회 내에서 서로 반목질시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정부는 이를 이용하여 교회 때리기 작전에 성과를 거두었고 소수 교회를 제외하고 별다른 저항없이 저자세 내지는 대부분 침묵으로 일관했고 또는 친정부적으로 편한 쪽으로 갈아탔다.

그것이 온라인 예배, 비대면 예배라는 정부가 짜놓은 프레임에 앞다투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이시대 상황에 맞는 예배라고 규정하면서 유튜브 예배 콘테스트라도 하듯이 마치 그들이 말하는 대세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에도 정부 명령에 저항하여 예배를 지키느라 법적 소송도 불사하여 미국의 대표적인 교회로 손꼽히는 그레이스 커뮤니티교회 존 맥아더 목사는 최근 ‘성경적인 교회는 주의 첫날 함께 모여 예배 하고 기도하고 친교하고 주의 만찬을 떼는 것이었다. 우리는 함께 있을 때 교회다. 집단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교회다’라고 함으로써 ‘온라인 예배는 성경적 정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진정한 예배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다시말해 각 교단장들이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고 만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면서도 자기합리화로 애써 변명하기에 급급했다. 권력에 빌붙은 기득권의 성향이 늘 그렇듯이 교회가 정부에 협조해야 한다는 것과, 국민의 부정적인 정서 때문이라는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을 뿐 일말의 회개도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처음부터 무력하게 굴복한 한국의 대형교회와 각 교단장들의 책임은 역사에 수치로 기록될 중대 범과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희망적인 교회,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예배를 결코 폐할 수 없다고 하면서 단호하게 저항한 일부 교회도 없지 않았다. 여기에 우리 문산교회도 어려움이 없는건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모든 예배 사수하는 일에 정부측의 예배금지 위법명령에 동의하지 않고 줄곧 예배해 왔다. 이런 소수 교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교회가 숨죽이고 스스로 교회 문을 닫거나 예배를 포기하자 교회를 오히려 고위험집단으로 분류한 나머지 더 강력한 조치를 발동하여 예배를 짓밟아 버렸다.

이후 불의한 권력에 저항했던 교회 중심으로 헌법에 보장된 합법적인 예배 자유를 되찾기 위한 법적투쟁이 법적 자문을 하는 기독 법조인들이 나서면서 늦게나마 전개되기 시작했다. 정부와 행정기관에 소송을 제기하여 일부 승소하면서부터 정부와 행정기관은 이때야 비로소 법원의 판결에 별수 없이 물러섰고 무엇보다 예배 자유를 사수하고자 하는 연대모임(예자연)이 결성되어 합법적 투쟁으로 불법적인 정부의 예배금지 명령에 항거하자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주님의 피 값으로 세운 교회라고 말하기가 불과 2년이란 악몽같은 짧은 시간에 성경이 제시하는 교회가 무엇인지, 예배가 무엇인지에 대해 성경적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결과 이것들이 무너져버린 현 위기상황에서 한국교회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오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1950. 6.25 전쟁 발발 후 밀리고 밀려 부산까지 밀린 백척간두 (百尺竿頭)의 위기에서 부산 초량교회 등에서의 구국기도회와 8.1부터 55일간 벌어진 낙동강 전투를 연상하게 하는 부산에서 초교파적으로 모이는 11.11 국가 긴급 구국 기도회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는 교회와 나라 독립운동 한다는 심정으로 지금 활동하고 있는 감거협 몇몇 목사님들과 함께 왕복 약 12시간이라는 장시간거리와 5시간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목회자 자신부터 회개하자는 그 기도회에 함께 참석하고 돌아왔다.

다시 한번 기억하고 싶다. "진정한 자유의 소중한 가치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다시 말해 자유민주주의, 교회예배의 자유는 무상급식, 무상마스크 배급, 무상 재난지원금과 바꿔치기 할 수 없다는 사실과 그런 포플리즘성 공짜로 오지 않는다. 라는 확고한 의식 정도는 진정한 기독교 신자라면 갖추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