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속에서 건진 감사
화재 속에서 건진 감사
  • 민돈원
  • 승인 2021.10.2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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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목요일은 추계 대 심방이 시작하는 첫날이다. 첫 가정은 원로장로님 댁이었다. 심방을 마치자 몸이 불편한데도 미리 따 놓은 붉은 홍시감을 한 아름 준비해 놓으셨다가 선물로 주셨다. 또한 직접 재배한 강화의 특산품 속노랑 고구마 한 박스도 챙겨 주셨다. 그리고 두 번째 권사님 가정을 심방하여 거의 끝나갈 무렵 오후 4시가 넘은 시각쯤이었다. 여러통의 문자와 전화가 수신되었다. 86세이신 권사님 댁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급보였다.

서둘러 심방을 마치고 화재현장에 우리 부부가 도착하니 권사님과 이웃의 몇 분, 그리고 같은 속 식구인 권사님이 수도를 수리하고 있었다. 화재가 난 권사님댁은 딸과 함께 사는 집으로 권사님이 거하시는 안채가 있고 딸이 기거하는 방이 따로 붙어 있는 구조이다. 보일러로 온방 시설이 되어 있지만, 옛날 집인지라 화목을 사용한 온방 시설을 겸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외부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위해 화목을 땔감으로 사용하고 있다. 권사님 댁의 화재 발화점은 바로 이 아궁이에 지핀 화목 등의 주의 소홀로 인화물에 옮겨붙은 화재 사건이었다.

권사님은 올해 86세 고령이지만 집안의 웬만한 일은 거뜬히 해낼 정도의 기력을 지닌 분이다. 더욱이 목소리도 종종 심방 때 얘기 나누다 보면 1시간 정도는 입담이 좋으셔서 그 연세와 달리 쩌렁쩌렁 지칠 줄 모를 정도로 얘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 만담가이시다. 의외로 사교적이고 활동적이다. 공무원(미혼)인 딸이 어머니를 모시고 단란하게 살아오는 가정인데 이번 화재에 대한 실수로 얼마나 권사님이 스스로 자책할까 걱정스런 마음이 앞섰다. 가서 집안을 살펴보니 어느 것 하나 남아 난 것이 없을 정도로 침대, 가구 등이 시꺼멓게 모두 탄 채 소실되었다.(사진) 위 천장에는 옛날 집이기에 여기저기 통나무들로 된 석가래가 모두 타서 무너지기 직전의 숯으로 변해 있었다. 권사님이 거처하는 안채는 전소가 되었으나 딸이 거처하는 집채는 붙어 있었는데도 사전에 진화되어 그나마 다행히 번지지 않았다.

이런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간 우리 부부는 밖에 머무르고 있는 권사님과 그 때 화재 당시의 상황을 들으며 놀란 마음이 조금이라도 해소되길 바라기에 옆에 같이 있어 주는 게 필요했다. 권사님은 이런 와중에도 오히려 나에게 이런 감사의 말로 스스로의 충격을 완충시키는 모습에 놀란 사람은 정작 권사님이 아니라 우리부부였다.

나는 권사님을 처음 보는순간 이렇게 말을 건넸다. ‘권사님 얼마나 놀라셨어요?’

그랬더니 권사님은 '목사님! 기도해주셔서 살았어요. 지난 수요일에도 기도해주셨다고 들었어요(수요기도팀이 예배 후에 따로 모여 기도함) 방 안에 있지 않고 밭에 있어 화를 면했으니 얼마나 감사해요, 딸이 아니면 이런 집도 못 살았을 거예요. 집은 다시 지으면 되죠. 감사해요. 화재보험에 들어 놓았어요. 딸이 사는 방은 멀쩡하니 감사하죠...'

화재 중에도 연신 감사하는 권사님!

나는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권사님은 화재로 가재도구, 아끼던 가구, 어쩌면 불탄 어딘가에 두었을 지폐로 된 아까운 돈도 다 불타버려 재생도, 건질 수도 없이 잃은 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재난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건져 낸 게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앞에 권사님이 고백한 소중한 감사의 목록들이다.

잃은 중에 얻은 것을 찾을 줄 아는 여유를 지닌 노 권사님은 지난해부터 더욱이 공무원인 딸이 어머니가 교회 가서 예배드리는 것을 코로나를 이유로 눈치 보느라 몇 번 예배드리지 못하는 송구함을 표현하곤 했다. 그러나 그 중심에 환난 중에 감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강인한 의지 못지않은 신앙의 모습을 칭찬하고 싶다.

곧 있으면 당장 추운 겨울이 오는데 혹독한 겨울나야 할 일, 새로 집을 짓는 일 등을 생각하노라면 아마도 권사님의 마음에 불현듯 찾아오는 걱정이 없을 리 없다. 그런 중에서 이런 크고 작은 고난 중에 있는 모든 분에게 주님의 크신 은혜와 평강으로 그 입술로 감사했던 것 이상으로 더 큰 감사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전소된 안방
전소된 안방
화재 발화점
화재 발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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