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침묵은 정체성의 부재다
선택적 침묵은 정체성의 부재다
  • 민돈원
  • 승인 2021.10.05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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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 신학자가 그의 페북을 통해 젊은 목회자들에게 조언해 준 얘기를 소개했다. 그것은 '첫째, 매일 매일 공부하라, 둘째, 설교 잘 하면 (교회 담임으로) 갈 데 많다'라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그러자 역시 내가 잘 아는 목사님이 이에 대해 ‘정체성(identity)을 상실하지 말라. 라고 한 가지 더 추가해 주세요.’라는 댓글을 달았다.

나는 두 분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면서 한 가지 간과하기 쉽고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지적하고 싶다. 우선 신학자가 말한 공부 많이 하고 설교를 잘 준비하면 갈 교회도 많고 나아가서 큰 교회 청빙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는 얘기는 비단 목회자가 아닐지라도 지극히 평범한 덕담이다. 반면에 댓글을 단 목사님의 의견이 어떤 점에서는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지적이라고 여겨졌다. 왜냐하면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여 실력을 쌓아 청중을 감동케 하고 인기있는 설교가라 할지라도 정체성을 상실하면 그런 실력이나 설교는 자기 인기관리를 위한 영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내면에 목회자 신분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소양, 소속감, 시대정신과 회중을 선도할 목회철학과 소신이라 할 수 있는 일관된 정체성이 갖추어져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로 지식인들이나 대중앞에 서는 리더들에게 숨길 수 없는 결정적인 약점-불편한 진실-이 있다. 그것은 확고한 자기 소신이나 정체성이 희박한 자들의 경우 자신에게 올 두려움이나 불리할 때 사용하는 가장 친근한 기재가 ‘선택적 침묵’이다

이해를 돕기위해 지난 80년대 대학가를 떠올려 본다. 신군부 정권 당시 민주화를 외치며 정권타도를 주장하는 대학생들의 학내시위는 물론 거리시위가 연일 그칠 날이 없었다. 이때 이런 일에 가속도가 붙게 하고 촉매 역할 하는 지식인 집단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전국 각 대학 교수들, 목회자들의 시국성명서 등, 우후죽순 발표한 정권규탄과 퇴진을 주장하는 이른바 민주화 지지 선언이다. 그때 대학생을 비롯한 지식, 언론인들은 돌이켜보건대 몇 가지 각오, 즉 해직당할 각오, 감옥 갈 각오, 강제 징집당할 각오, 분신하며 목숨 내던질 각오의 투쟁 의지로 타올라 꺾이지 않았다. 결국 그들이 약 40년이란 세월이 흐른 오늘에 이르러 이 나라 정치, 교육, 국방, 외교, 통일, 언론, 문화예술, 법조계, 의학계, 노동계 심지어 기독교계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을 총 막라해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보다 더한 대한민국 근간인 국기를 흔들어 종북이념에 깊게 물든 주장들이 여과없이 묵인되고, 진영논리의 프레임으로 사분오열된 국론분열 조장, 교회를 말살하고 있는 현 정권에 대해서는 왜 요즘 젊은 대학생들에게서는 80년대 청년들이 불의에 항거한 야성을 찾아보기 힘들까? 더욱이 그때와 같은 대학교수들의 성명서 한 장도 보기 힘들까? 그 외에도 기타 양심세력들의 집단성명 역시 그때와는 달리 이토록 숨죽이고 있는 이유가 궁금할 정도이다.

아마도 몇 가지 원인이 있다고 본다. 그건 그때와 견줄만한 신념에 투철한 지식인들의 빈곤과 실종, 대학생들의 의식과 애국 의지 상실, 언론 재갈법으로 인한 관제화 된 언론, 그러나 더욱이 이 무엇보다 지난 2년간 코로나 정치 방역의 완벽한 통제로 개인의 자율권 제한이라는 악재, 이로 인한 표현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 원천봉쇄. 이 정권의 배급제도인 국민지원금 지급과 같은 포퓰리즘 등에 길들여 온 결과 그나마 창의적 비판마저 할 수 없는 입과 마음에 착고가 채워져 야성을 잃어버린 데 있다.

따라서 이런 환난의 때에 최소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과 시대적 책임을 각인시켜 주었는지 목사로서 스스로 묻고 또 물으며 자성할 때이다. 즉 어쩌면 수많은 신학공부로 실력을 쌓고 영감있는 설교자로까지 각광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토록 신학적이고 현란한 기교로써 진리를 외친 것과 달리 역사의 현장을 외면한 몰역사적인 삶으로 침묵하고 익숙하게 살아왔다면 하나님을 빙자한 직업적인 설교의 유희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다. 실력있는 진정한 설교자라고 말하려면 어두운 시대일수록 선택적 침묵을 거부해야 한다. 이것이 정체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정체성을 상실한 자는 설교 뒤에 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짓은 진리를 이길 수 없다, 몸을 가둘 수는 있으나 복음은 가두거나 묶어 둘 수 없다. 적어도 이 상식과 같은 진리따라 사는 목사라면 어두운 시대일수록 교회가 깨어 일어나도록 앞장서서 외칠 때 진정한 복음을 가진 예수님의 종이라 일컬음을 받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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