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시대속의 평안
불안한 시대속의 평안
  • 이구영
  • 승인 2021.09.2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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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시대라기보다는 평화가 없는 시대를 삽니다.
내란으로 평화를 잃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뭄과 홍수, 높아진 해수면 때문에 불안한 이들도 있습니다. 난민 신세가 되어서 자식을 안고 업고 이리 저리 떠돌며 국경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높아진 집값과 크게 늘어난 지출 규모 때문에 경제적인 안정에서 멀어진 이들도 있습니다. 전염병으로 인한 상실감이 너무 커서 평온이 사라진지 오래된 이들도 있습니다. 목회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여기 저기 돈 되는 일을 찾아 기웃거려야 하는 우리들의 형편도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우리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낙원에서 멀어진 후 가시덤불과 엉겅퀴와 더불어 살았고, 큰 아들이 작은 아들을 죽이는 것을 보면서 심장이 떨리며 살던 사람들입니다. 노아도, 아브라함도, 이삭이나 모세, 다윗도 다 평온한 인생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바울 목사님의 삶에서도 평화를 찾기 어렵고, 예수님조차도 대적들 속에서 전투적인 삶을 사시곤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평화를 강조하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가지고 계신 이 평화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14:27)

평화가 그렇게 쉽게 찾아오는 것일까요?
특별히 요동치는 상황 속에서 내적인 평화가 하늘에서 막 쏟아질 수 있는 것일까요?

성경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오히려, 힘들지만 불안하지만 환경이 여전히 어렵지만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 또 기도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누려지는 특혜임을 강조합니다.

시편 120편부터 134편에 이르는 짧은 시들은 성전에 올라가는 사람들의 노래입니다. 120편에 보면 그들은 환난 당하는 자들, 수근 거리는 소리를 듣는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121편에 보면 그들은 사람들이나 환경에 눈을 둘 수 없을 만큼 불안한 삶을 살았기에 눈을 들어 주님계신 성전을 바라보아야 살 수 있는 힘든 삶 속에 있었습니다. 122편에 보면 그들은 성전에 가고 싶어 했고, 그곳에서 예배를 통해서 누려지는 평화를 사모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평화를 맛보며 살았던 사람들이었기에 더욱 더 성전 예배를 그리워했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기도의 삶 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로부터 공급되는 평화를 받으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상황은 여전히 어렵지만 예배를 통해서 기도라는 통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평화를 공급해 주고 계셨습니다.

오늘, 전염병과 양극화와 많은 자연재해와 실망의 요소들이 많지만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예배가 있고 기도가 있습니다. 예배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요동치는 세상에서 기쁨을 누리고 평온함을 경험하게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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