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서른 여섯 번째 이야기
큰나무 서른 여섯 번째 이야기
  • 이형연
  • 승인 2021.09.2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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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벌에 쏘였다. 시골생활 경력이 만만찮은데도 벌과의 화해는 아직 이루지 못하고 살아간다. 시골 태생인 내게 벌과의 모진 인연은 5세 때 기억인데 내게 남은 5세의 기억으로 유일하다. 이웃의 초가집 처마 밑은 서너 개의 토종벌통이 놓여 있었다. 그때 벌이 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 못했던 나는 무슨 의도로 그랬는지 기억에 없지만 벌들이 드나드는 작은 구멍에 싸리나무가지로 펜싱을 했다. 화가 난 벌들은 어린아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말 그대로 벌집이 되었는데 너무 심하게 쏘여 생명이 위급할 정도였다.

악동의 반열에 이름이 올릴 때인 초등학교 입학 시기는 호박꽃에서 꿀을 모으는 검은색 바탕에 노란 띠를 두르고 있는 호박벌을 괴롭히는 스릴 넘치는 장난을 즐겼는데 여지없이 거기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요지는 아침마당에 나가면 호박꽃에 들어가 꿀을 딴 는 호박벌을 꽃의 입구를 오므려 가둔 뒤 벌 꽁무니를 잘라 손톱만한 꿀을 빼내는 것이다. 호박벌의 저항도 대단하여 꽃을 뚫고 거대한 벌침으로 호박꽃을 잡고 있는 손을 공격하는 것이다. 여름내 손에서 부기가 빠지지 않고 보내야 했는데 이는 호대 대가를 치르고도 이 장난을 멈추지 못한데 있다.

벌에 대한 악몽은 첫 목회지에서 되 살아 났다. 양봉을 하시는 장로님은 사월이면 채비를 하여 남쪽으로 벌을 실고 떠났다가 유월이면 돌아오신다. 아카시아 꽃을 따라 남해에서 출발하여 휴전선 밑에 까지 갔다가 복귀하시는데 복귀하는 날이면 미리 연락을 하여 한밤에 차에서 벌통내리는 일을 도와 달라고 부탁을 하신다. 벌통 나르다 쉴 때는 종종 벌통에 앉아 쉬는데 벌이 드나드는 입구를 막아 안전했다. 벌통에 걸터앉아 잠시 쉬려고 하는 순간 불에 댄듯한 통증이 엉덩이 부근에 느껴졌다. 벌통을 탈출한 꿀벌을 깔고 앉은 것이다. 하루가 지나자 엉덩이는 짝 궁둥이가 되어 보는 이로 웃음을 참기 힘들게 만들었다.

목회 지를 옮겨 현재교회로 부임하면서 악몽은 그 스케일이 달라졌다. 이름만으로도 긴장감을 일으키는 장수말벌과의 예기치 않은 인연이 시작 되어 진다. 매실발효액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을 했는데 매실 청을 거르는 날 항아리 주변에 모여드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단내를 맡고 수많은 장수말벌들이 몰려들었다. 나라드는 소리는 주변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땅 바닥에 흘린 매실 청에 내려앉은 이 위험한 생명체를 맨발로 밟는 순간 경험해보지 못한 절대적인 통증이 발에서 시작하여 전신을 휘감았다. 차로 이십 여분 걸리는 병원응급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허벅지 까지 마비되었고 해독제가 들어 있는 혈청주사를 맞아야만 했다.

지난 추석 전날 친구와 산으로 다래를 따러 오르면서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로 기분이 업 되어 험산을 오르면서도 힘든 줄을 몰랐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 한참 만에 다래넝쿨이 계곡을 메운 곳에 도착했다. 무성한 줄기로 인해 전진이 어려워 정글도로 길을 내며 앞으로 가는 순간 거대한 무리의 장수말벌이 갑자기 땅에서 올라와 폭격하듯 달려들었다. 그대로 엎드려 구루기 시작하여 칡넝쿨이 발에 걸리면서 멈춰 설수 있었다. 벌들을 사라 졌고 심하게 둔기로 맞은 것 같은 통증이 머리에서 느껴졌다. 머리를 움켜쥐고 산 아래 세워둔 차를 향해 급하게 하산하여 응급실이 있는 병원을 찾았다. 머리 정수리부근 세군 데와 목 부위 세군데 양손에 한방씩 총8군데를 쏘여 의식이 흔들릴 지경이었다. 해독제가 혈관을 타면서 희미해지던 정신이 제자리를 찾았다. 이틀이 지나고 부기가 빠지는지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사라지면 긴장도 사라진다.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은 경건하고 진지한 삶을 잃기 쉽다.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교회의 가르침 덕택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놀라운 경지에 오른듯하다. 하나님이 벌 같이 쏘지 않을지라도 돌이킬 수 없는 처절한 심판이 있다는 사실도 가르치고 인식해야 신앙이 균형을 얻지 않을까 생각한다.

달 빛 고운 가을밤에 귀뚜리 소리가 서글픈 산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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