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의 달걀 사건
콜럼버스의 달걀 사건
  • 최광순
  • 승인 2021.08.2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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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들과 맞싸우다.

과거 김학중 목사님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주변이 모두 아파트 단지인데 누가 그런 교회 세우지 못하냐고?” 김학중 목사님은 “그러면 그때 아파트 단지 앞에 같이 서 있던 개척교회들은 왜 안되었냐고?” 대전에서 개척하려던 곳을 두고 교회 자리가 아니라고 주변에서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보기 좋게 개척하여 자립교회가 되었습니다.

철원의 구수교회 "황토와 편백나무 수련원"
철원의 구수교회 "황토와 편백나무 수련원"

철원도 참 외진 곳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내가 봐도 시내 좋은 교회 놔두고 올 리가 없었습니다. 부임할 당시 교인들도 공황 상태였습니다. '이 상태로 가면 구수교회는 10년 뒤면 사라질지 모릅니다.'라는 말에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죠" 말하는 중직도 있었습니다. 패배감에 젖어있어 하나님의 교회를 살리려는 의지나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교회 건축을 할 때도 주변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수련원을 지을 때도 누가 여기 오겠냐고 교인들마저 말했습니다. 그러나 보기 좋게 준공을 한 당해부터 모든 날짜가 쉴 틈 없이 꽉 채워졌습니다. 그 뒤론 목회자 여름휴가는 당연히 포기해야 했습니다. 또한 그 외진 곳에 시내에서 젊은 교우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어린아이들이 많아져 막내 아기가 몇 개월 만에 자리를 내주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습니다.

대전 10년, 철원 10년의 목회 후 새로운 도전을 위하여 춘천의 미자립교회로 부임했습니다.

신학대학원생들의 방문
신학대학원생들의 방문

 

오기는 왔지만, 보통내기가 아닌 교회였습니다. 한때는 사람들로 북적대던 교회가 왜 이리 추락했을까? 그래서 이곳 주일 첫 설교가 '문제를 알면 답이 보인다.'였습니다. 그래서 교우들에게 직언으로 설교했습니다. "라합의 이야기"로 풀어갔습니다.

여리고 사람들이 똑같은 소문을 들었지만,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은 그녀와 가족뿐이었다. 여리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소식을 듣고도 정탐꾼을 찾아 죽여 자신들의 돈과 집과 땅을 고수하려 했다. 그러나 라합은 생명을 내놓고 그들을 구해주었다. 이 사건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소문을 듣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라합은 똑같은 소문을 듣고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교우들에게 '당신들이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복음을 들어도 듣는 것을 끝나는 사람이 될 것인가? 그 복음에 생명을 거는 사람이 될 것인가?‘

'난 지난 20년 동안 눈치를 보며 보듬으며 화나도 참는 목회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목회 30년이 시작된 이 시점에서는 그런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목회를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서 바른 소리 하고 일관된 목회를 하겠습니다. 차라리 지금 당신들이 거부한다면 훈련된 우리 식구들과 다시 개척해 나갈 것입니다. 선택은 당신들이 하십시오!’

아니나 다를까 그래도 알아듣지 못하고 점심 먹고 조곤조곤하게 따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난 목회자가 나갈 때도 가장 반대하고 가장 목회자를 힘들게 했던 사람입니다.

"오늘 설교 나 들으라고 한 소리냐?"

그래서 조목조목 더 뼈아픈 소리를 공개적으로 반박했습니다.

'지난 세월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그 많던 교인이 이렇게 추락한 것은 사실이 아닌가?

'당신네 집은 덥다고 에어컨 달아놓고 교회에서 에어컨 달자고 하면 뭔 필요가 있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아니냐!'

'당신네는 집이 좁다고 더 큰 집으로 이사하겠다고 억에 가까운 돈을 대출하면서 교회가 무슨 일을 하자면 무슨 돈이 있어서 하냐고 반대하지 않냐!'

'한 생명을 구하려고 교회를 살리려고 부채를 졌는데 당신들은 그 정도도 하지 않으면서 교회가 성장하길 바라는가?'

'교회 자리가 동네 중앙에 있어 너무 좋다. 명당이라 말하면서 지난 10년 동안 전도하기는커녕 있던 교인마저 나가지 않았느냐? 당신들이 자랑하는 이 교회건물 하나 지키는 것이 무슨 큰일인 줄 생각하느냐?'

교회가 빚지는 것을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큰일로 여깁니다. 자신들은 아파트 사면서 차사면서 빚들을 지면서 말이다. 자식새끼들 결혼할 때 수천만 원도 모자라 아파트도 해주면서 말입니다.

대다수 교우들이 동조하지 않으니 더는 말 못 하는 것을 봅니다.

이제는 교인들 눈치가 안 보입니다. 안되면 개척이라도 다시 할 수 있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있는 자리에 욕심부리지 않으니 모든 게 자유롭습니다. 차라리 기존 교회보다 새로운 교인들을 데리고 훈련하는 것이 낫습니다. 30년 가까이 신앙생활을 하며 집사, 권사 되었지만, 성경 지식도 없고, 이사야가, 아모스가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중직인 양하지만 새신자와 똑같은 상황이니 말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내가 권사인데”

“내가 집사인데”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교인은 이미 변화되었고 꿈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한두 사람입니다. 이곳저곳 전화하며 자기 얘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 모함합니다. 그동안 마음이 아팠던 것은 공들여 등록하려고 했던 새가족이 이렇게 소문내고 트집 잡는 교우로 인해 발을 닫은 일입니다. 부부가 신실한 크리스챤이고 새 교회를 찾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정말 그때 울분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 미자립교회가 1년 만에 자립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콜럼버스의 달걀?

남이 해놓았던 것은 하기 쉽게 보입니다. 새로운 것은 시도조차 생각못합니다.

이탓 저탓만 할 뿐입니다. 안되는 사람은 안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내 잘못이 하나도 없다. ”

“모두가 환경과 상황탓이고 다른 사람탓이다.”

되는 사람은 아무리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 궁리를 찾아냅니다. 무인도에서 조차 살아갈 방법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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