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아펜젤러 남부순행일기 8월28일 수요일 대구 경샹도
제11화 아펜젤러 남부순행일기 8월28일 수요일 대구 경샹도
  • 리진만
  • 승인 2021.08.2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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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오전은 긴 밤을 잘 쉬었기에 매우 상쾌했다. 대구도호부(大邱都護府) 성벽의 모습으로 보자면 직사각형(아펜젤러는 대구 성벽을 보고 직사각형 도성이라고 기술했고, 함께 여행했던 존스는 6각형 도성이라고 기술했다. 또한, 이들보다 10개월 전인 1888년 10월에 대구관찰사를 예방한 샤를 바라(Louis-Charles Varat)는 ‘평행사변형’으로 성벽이 이어져 있었다고 그의 여행기 『조선기행』에 썼다. 한편, 대구읍성의 축성 과정을 기록한 영영축성비(嶺營築城碑)에 의하면 읍성의 둘레는 총 2,124보(步) 약 2.56Km였다. 성경에 많이 나오는 현재 예루살렘 성의 길이는 약 4Km이다.) 도읍이라 할 수 있겠다. 관찰사와 판관의 관사는 도성의 북쪽 지역에 있다. 세금징수소는 동쪽과 서쪽이 아닌 남쪽과 북쪽에 있다.

서문 밖에는 그 밖의 집들이 많았는데 아마도 경제활동은 그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규모가 성내 도읍만큼일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내가 전신국에 갔을 때 들은 얘기로는 성내에는 1만 여채의 집이 있고 성밖에도 그만큼의 집이 있다고 했다. 이는 가옥이 20,000채 인구로 말하자면 100,000명이 사는 커다란 도성이다. 내 생각으로는 대구 도성과 주변 지역은 평양만큼 크고 아마도 서울 이외의 도시로써 평양과 버금가는 도성은 대구가 유일하다. 내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 도성의 크기를 송도와 비교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대구에서는 국가 소유이거나 상점 몇 군데 이외에는 타일로 장식된 집을 보기 쉽지 않았다. 도성에는 믿을지 모르겠지만 가난의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도성은 잘 구획되어 있지 않았고, 경사진 곳에 있었다. 강 위의 평야로부터 현재 도성이 있는 북쪽까지 오르막으로 되어있다.

대구 시장에 진열된 물품들은 송도(아펜젤러는 송도의 영문 표기를 Sunto 라 했는데 이는 션됴-> 션도-> 선도-> 숑도-> 송도로 정착되었다.)의 것과 비슷했지만, 그것은 여러분이 평양에서 느끼는 풍부함이라든가 값이 적절하다고는 느낄 수 없었다. 이곳 도성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규모의 도성에 사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런 생기가 돌지 않았다. 이것은 물론 내 첫인상이니까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교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서울이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는 평양이고 그곳이 관리하는 도성은 후에 올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평양의 광산이 개발되기 시작한다면 평양은 커다란 거점이 될 것이다. 수도에서 당신들은 수일 이내에 다른 주요하고 영향력 있는 도성으로 갈 수 있다. 내가 확신하기로는 평양이 아직 개항장으로 지정이 되지는 않았지만 1~2년 사이에 증기선이 제물포와 평양을 오갈 것이라 믿는다.

송도는 서울에서 항상 관리할 수 있다. 다음으로 주요한 도성은 대구이다. 나는 남쪽으로 100마일 떨어진 거리 즉 3일의 여정인 부산에서 대구를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경새재는 내가 서울에서 경상도를 관리하자면 넘을 수 없는 장벽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 산을 넘기 위해 우리의 목숨을 담보하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겨울에 문경새재를 넘는다는 것은 생명을 거는 행위이며 항상 사람이나 야생 동물의 위험이 있다. 조선 사람들은 수 세기 동안 이 재를 넘었지만, 넘기 위험한 산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부산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경상도 중심 지역인 이곳에 오기가 수월하고 경상도 내에 있는 모든 마을에 쉽게 갈 수 있고 또한 전라도와 충청도까지도 갈 수 있다. 부산에서 증기선(1888년 외국인으로 처음 제주도를 여행한 샤이에 롱 미공사관 서기관은 1888년 10월 19일 부산에서 증기선을 타고 원산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여행한바 있고 초기 선교사들 역시 처음 상주한 동해안 도시는 원산이었다.)을 타고 함경도의 수부(首府)인 함흥에 가서 사역할 수 있다.

경상도는 서울에서 가는 것보다 적은 경비와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방안은 현재로서 나에게는 서울 사역을 강력하게 하려는 계획의 우려 이기도 하다. 평양에 선교를 시작하고 가능한 한 이른 시일에 가족을 보내고, 다음으로 부산에 파송한 후 그다음 해에는 다른 선교팀을 경상도에 보내야 한다.

대구읍성 복원 지도 Ⓒ 대구시 중구
대구읍성 복원 지도 Ⓒ 대구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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