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의 레이서들
바다 위의 레이서들
  • 남광현
  • 승인 2021.08.2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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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며느리들 돌아오게 하는 생선이 있는디 혹시 목사님 아시나요?” 능청스럽게 권사님 한 분이 물어온다. 그의 손에는 잘 무쳐진 전어회 한 접시가 들려져 있다.

“권사님, 전어잖아요, 저도 어촌생활 19년 차예요, 00리 주민인데 벌써 알지요”

작은 것이라도 목사 가정과 함께 나누시려는 교우분들의 큰 사랑을 또다시 경험하게 된다. 이 더위에 교회까지 비지땀 흘리며 올라오는 수고를 하시고도 그냥 건네기가 멋쩍어 내어놓은 말씀이다. 말씀인즉, 금어기가 조금 일찍 끝나 올해는 8월 13일부터 가을 어장이 시작되었고 마을 어선들이 바다에 나가서 첫 번 수확한 것을 조금 얻어 회를 쓸었노라는 것이다.

참 감사하다. 이러하기에 믿음의 가정들과 마을 어선들의 안전한 조업을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다. 19년 전 필자가 이 마을로 부임해 올 당시 초입에 있는 횟집 간판이 아주 독특해 기억이 생생하다. 횟집 이름이 [집 나간 며느리 돌아왔네]였다. 지금은 아쉽게도 사라진 횟집의 간판이 되었지만, 그 당시 필자에게는 너무나 재미있는 이름이었다. 한동안 가을 전어의 인기가 높을 때 꽤 유명세를 떨쳤던 횟집이다. 한때 전어잡이 배들이 호황을 누리던 시기도 있었는데 요즘은 어획량도 그렇고 인건비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전어잡이는 2척의 배가 1개 조를 이루며 선원은 선장을 포함하여 보통 5~9명으로 구성되어 조업한다. 한 척은 모선이라고 해서 잡은 전어를 산채로 포구까지 이송하는 역할과 조업하는 어부들의 쉼과 식사를 마련하는 역할을 병행한다. 그래서 이 모선은 제법 크기가 있고 움직임이 느리다. 다른 한 척은 전혀 다르다. 이 배는 그물배라고 불리며 작고 빠르다. 경정을 아시는 분들은 이해가 쉬울 듯한데 경정만큼이나 빠르게 달릴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전어는 떼를 지어 다니는 특성이 있는 생선이기에 바다에서 전어를 만나면 무엇보다도 빨리 그물로 에워싸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배는 주로 1톤 이하의 작은 보트로 보통 300마력 이상의 엔진 2개를 장착하게 된다. 실제 그 배를 운항하는 교우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평생 바다에서 일을 한 사람도 겁이 날 정도로 빠르다고 한다. 어군(魚群)이 탐지되면 보통 32노트의 속도로 달려 그물을 펼친다고 한다. 이때는 그분들 표현으로 날치처럼 배가 날아간다고 한다. 속도를 이기지 못해 때론 어부들이 배에서 떨어지는 일들도 있다고들 말한다. 위험천만한 작업이다.

32노트(knot)의 속도가 어느 정도길래 저렇게들 말씀하시는가? 1노트(kn)는 1.852km/h의 속도를 말하는 것으로, 보통 일반여객선은 15노트 미만(27km/h), 화물선은 평균 15노트~25노트(27km/h~46km/h), 쾌속 여객선은 25노트~35노트(37km/h~65km/h), 초 쾌속 여객선은 35노트 이상(56km/h~), 그리고 해양경찰청의 경비정은 30노트(55km/h), 경정에서 사용되는 보트가 32노트의 엔진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전어잡이 그물배는 해양경찰청의 경비정보다도 빨리 달린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바다 위에서 체감되는 배의 속도가 일반 자동차로 도로를 달리는 속도보다 2배가량 빠르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바닷물을 치고 나갈 때 몸에 와 닿는 충격은 두려움일 수밖에 없고 그 와중에 때를 놓치지 않고 무거운 그물을 던져야 하는 어부들의 심적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들어보니, 노릇노릇 구어 한입에 넣고 그 고소함을 즐기던 전어가 어부들의 두려움과 심적 부담의 열매들이었다.

교회 마당에서 바라보면 전어잡이 배들이 하얀 포말을 뒤로하며 달음질하는 장면이 장관일 때가 많다. 재미난 것은 단지 전어를 잡기 위해 그리 빠르게 조업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선주들의 욕심과 어부들의 경쟁심이 그물배들의 속도를 점점 더 빠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요즘 어선 대부분이 어탐기(어군탐지기)를 보유하고 있어 전어 떼가 어디에 있는지 거의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전어가 출몰한 지역으로 누가 먼저 가느냐가 관건이고 먼저 그물을 내리는 배가 우선권을 가지는 것이 전어잡이의 불문율이다. 그 드넓은 바다에서도 시간 싸움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하기에 전어잡이 어부들은 두려움과 부담 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바다의 레이서들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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