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내준 사람들
집을 내준 사람들
  • 이구영
  • 승인 2021.08.20 0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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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라는 도시에 도착한 바울 목사님 일행은, 안식일이 되어 예배를 드리고 싶어서 회당을 찾았는데 회당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강가로 나아가서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데 그곳에서 어떤 여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들도 예배를 드리러 그곳에 나와 있었습니다. 바울 목사님 일행이 예배를 드리니까 그 여자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바울 목사님이 인도하셔서 예배가 드려지고 그 예배가 마치자 그때 거기에 있던 사람 중에 루디아 라는 여자가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목사님! 저는 오늘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흐릿하게 알았던 것들에 대하여 명확해진 부분이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내 혈통이나 내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음이 믿어졌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천국의 길이 열림도 믿게 되었고, 이 땅에서의 행복이나 사명 역시 내 능력이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속에 이루어져 감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서 하셨던 그 말씀을 우리 집에 가셔서 한 번 더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내 가족들이 다 구원받고 천국에 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 길로 바울 목사님 일행이 루디아의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배를 또 드렸고 말씀을 들은 가족들이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님으로 모시겠다고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바울 목사님은 망설임 없이 세례를 베풀었고, 그의 온 가족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이제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님으로 모시고 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바울 목사님 일행을 집으로 모신 루디아 덕분에 사람들이 더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부흥회가 열렸고, 먹거리들을 싸 가지고 와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생긴 교회가 빌립보교회입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헌신의 일꾼들이 나오는데 그들 중에 최고는 자신의 집을 교회로 내어준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 예루살렘에서 교회가 처음 시작될 때 그곳에는 자신이 집을 교인들의 모임장소로 내어준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 그분은 자신의 집을 통째로 교회로 쓸 수 있도록 헌신했습니다.
. 에베소에 교회가 세워질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자신의 집을 교회로 내 놓았습니다.
[고전 16: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 라오디게아에 교회가 세워질 때도 눕바라는 헌신하는 여자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도 자신의 집을 목사님과 교인들의 쉼을 위해 내어 놓았고, 예배 처소로 내어 놓았습니다.
[골 4: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 골로새라는 도시에 교회가 세워질 때는 부유한 장로님이셨던 빌레몬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 압비아, 그의 아들 아킵보의 헌신이 있습니다.
[빌레몬서 1:1-2]
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2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이었습니다. 지금 이름 대면 알만한 큰 교회들의 시작이 어떤 평범한 분들의 절대적인 헌신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것 아시나요
오늘 한번쯤 생각해봅니다.
난 우리 집에서 매일 예배를 드릴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까?
매일 교인들이 10여명 씩 왔다 갔다 한다면 어떻게 할까?

사랑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서 루디아가 더 위대해보입니다. 오늘날도 중국은 기독교를 핍박하고 있습니다만, 모택동 시절에는 모든 교회들이 철저히 폐쇄되었고, 선교사들은 모두 강제로 추방당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국의 기독교는 끝났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택동이 죽은 후 다시 중국이 개방되었을 때에, 기독교인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가정 지하교회를 통해 더욱 크게 부흥되었습니다. 그 당시 3백만 명 정도의 교인이 최소 5천만 명에서 최대 8천만 명으로 증가해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처소교회 또는 지하교회라고 하는 가정교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성경책도 없고 교역자도 없었지만 한 가정 혹은 두세 가정이 모여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가정을 제공한 사람은 또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이 마지막 때에, 전염병 때문에 잘 모이지도 못하는 이때에, 건강한 교회가 되고 또 어떤 환난과 핍박이 와도 계속해서 교회가 부흥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모든 성도들이 가정을 중심으로 해서 신앙으로 무장한다면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비대면 시대에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사랑이 식어지지 않고 구령의 열정을 피워나갈 수 있는 길은, 헌신한 사람들을 통한 가정예배의 회복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2:46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라고 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성전에서 모이고 또 각 가정에서 모였습니다.

비대면 시대 교회의 갈 길입니다.

이것을 시작한 사람이 루디아이고, 이 루디아의 헌신속에 빌립보교회는 든든히 세워져 갔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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