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들어갈 수 없어요!
아빠 들어갈 수 없어요!
  • 민돈원
  • 승인 2021.08.03 14: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위직 공무원이나 고급 지휘관의 경우 자신의 처신에 대한 품위는 세간에 주목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행동 하나, 말 하나까지 스스로 품위를 지켜야 한다. 이에 따라 그들에게는 품위유지비도 지급된다. 품위(品位)란 ‘사람이 공적이든 사적이든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을 말한다.’

이런 품위를 소중히 여기는 또 다른 부류가 있는데 사관생도이다. 이들이 학교에서 학기를 마치고 방학을 맞아 집에 오는 경우 사복이 아닌 제복을 입고 나온다. 해사의 경우 모자에서부터 하복인 흰 제복에다 하얀 구두 그리고 007 가방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일체를 지급한다. 뿐만 아니라 재학기간 일정한 품위유지비도 지급되는 혜택을 누리게 된다. 금년 해사에 입학한 아들이 지난주까지 7월 한 달간 포항에서 해병훈련을 마쳤다. 그 훈련이 끝나자마자 1학기 방학에 들어가면서 집에 온다기에 공항으로 마중 나갔다.

4년 동안 내내 정해진 규율에 따라 문무를 겸비해야 하는 아들에게는 대학생이 되어 누릴 첫 학기의 설레임과는 달리 일반 대학생들처럼 낭만을 즐기는 것과는 크게 거리가 멀다. 아내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중에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식당에 가서 아들에게 시원한 콩국수를 먹자. 라고 했더니 아들이 ‘아빠 들어갈 수 없어요!’ 제복을 입고 그런 곳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순간 아차! 그렇지, 4년간 전액 국비로 공부함은 물론 엄격한 규정대로 100% 기숙사 생활을 하는 가운데 지휘관으로서의 소양을 쌓아가는 이들에게서 무언가 다름을 발견했다. 어디서든지 제복을 입고 있는 한 재학기간 내내 품위를 소중히 여기게 하는 사관생도의 정신적 가치가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자신의 행동거지(行動擧止)가 확연히 달라지는 신선함을 내 곁에 있는 아들에게서 볼 수 있었다.

한편 똑같은 대학생 신분으로 오래전 예비군 훈련받을 때가 스쳐갔다. 학생예비군으로 일 년에 한 차례 몇 시간 군부대에 가서 같은 대학생끼리 훈련받을 때가 있었다. 예비군복을 일명 개구리복(개구리 색깔과 비슷하여 붙여진 말)이라고 부르던 시절이다. 이 복장만 하면 몇가지 이상한 행동을 목격하게 된다. 즉 말을 잘 듣지 않아 지휘관이 통제하는 데 애를 먹는다. 아무 데나 방뇨하기 일쑤이다. 쉬는 시간은 물론 끝나고 나면 음주 흡연은 예사다. 이런 행동은 일반사회 예비군들일수록 더 심하다. 어떤 제복을 입으면 품위를 지키고 행동을 삼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예비군복처럼 이 복장을 하기만 하면 적지 않은 이들이 품위는 고사하고 볼썽사나운 행위로 스스로 천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서 사관생도인 아들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사관생도의 자부심이 제복 자체에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제복을 입고 다니는 한 사관생도로서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 제복을 입은 4년 기간 동안 학과공부와 군사훈련을 갈고닦은 실력과 함께 자부심과 정체성을 가지고 조국에 대한 충성심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제복 외출은 권장할 만하다. 그 제복을 착용하고 음식점 출입도 함부로 하지 않게 교육받을 정도라면 감히 부끄러운 장소 출입을 삼가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품위가 이토록 소중하다. 잘 먹고 잘사는 것만이 사람답게 사는 게 아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게 아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의 위상을 생각해보았다. 우리도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다. 그 제복은 “그리스도로 옷 입고”(롬13;14) 라고 했으니 출입할 곳, 출입하지 말아야 할 곳을 가려야 하겠다. 나아가서 목사인 나에게는 더더욱 목사 까운만이 아니라 목회자 셔츠(제복)를 입고 다니는 한 반드시 목사로서의 품위를 지킴으로써 세상에 다니되 몸을 삼가는 일을 사관생도인 아들로부터 배우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