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있는 것을 믿기에
영혼이 있는 것을 믿기에
  • 신상균
  • 승인 2021.07.29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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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아침 8시, 1부 예배를 마치고 나오자 권사님이 급하게 저를 찾으셨습니다.
“목사님, 9시 15분에 전화하라고 했어요. 15분에 전화올거예요.”

102년을 살았던 권사님,
하나 밖에 없는 딸도 나이가 들어 몸이 안 좋은 상태이고, 권사님은 기력이 쇠하셔서 한달전 요양원에 입원하셨었는데, 그 권사님께서 전날 토요일 밤 11시 57분에 소천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위가 목사님 전화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도 다니지 않는 사위가 장모님의 죽음 앞에서, 그래도 교회 목사님에게는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전화를 했습니다. 다행히 예전에 한번 본 적이 있었기에 편안하게 통화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오후 예배 드리고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로 인해 서울은 장례도 가족끼리 밖에 못한다고 하는데, 하나밖에 없는 딸은 교회도 다니지 않는데, 우리 지역도 장례식 참석하는 것 쉬운 상황이 아닌데, 그러나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돌아가신 권사님은 우리교회 권사님이셨고, 권사님은 죽었지만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영혼이 없다면,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일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있고, 죽음이 끝이 아니기에 나는 당연히 권사님의 마지막 천국환송예배를 드리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후 예배를 드리고 나서 장례식장을 찾았습니다.
딸과 사위, 그리고 몇분 가족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썰렁한 장례식장 제단 위에는 그나마 우리교회에서 보낸 조화가 권사님의 사진을 보좌하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든 하나 밖에 없는 딸을 둔 장례식장
갑자기 “정승이 죽으면 손님이 없지만, 정승집 개가 죽으면 손님이 많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영혼이 없다면 그렇겠지요.
그러나 영혼이 있다고 믿는 우리들은 정성껏 임종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사위분께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장례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권사님을 보냈습니다.

땅에 하관하면서 평소에 권사님이 외우시던 고린도전서 13장을 읽고 나서 말씀을 전합니다.
“권사님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장례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

영혼이 없다면 우리는 코로나 핑계로 예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혼이 없다면 우리는 안 믿는 자녀들에게 맡기고 예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혼이 없다면 우리는 덥다고 슬며시 모르는 척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있기에 무더위 속에서 땀을 흘리며 예배했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그렇게 권사님을 보냈습니다. 영혼이 있기에 우리는 권사님을 가족들에게 맡기지 않고, 자녀들보다 더 가까웠던 교우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영혼이 있기에, 우리는 먼 훗날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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