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4차원으로 방역 4단계를 돌파(Breakthrough)하라
영적 4차원으로 방역 4단계를 돌파(Breakthrough)하라
  • 민돈원
  • 승인 2021.07.2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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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초 국내 확진자가 그 이전의 세자리수에서 연일 1,500명 수준을 웃돌자 정부는 수도권에 종전의 입장을 갑자기 바꾸어 난데없이 최고 높은 수위인 4단계 방역지침을 발표했다. 그 중에 모든 종교집회는 불허한다는 내용 등을 포함한 초강수를 두었다. 7월부터 숨막힐 듯한 제한 조치가 풀려 지리라는 여망도 한순간에 수포로 끝났다.

이에 시약불견할 수 없다는 뜻을 가진 전국의 700여 교회가 7월 둘째주 예배금지에 불복하여 가처분 신청을 하는 일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이 소송에 서울의 일부 8개 교회, 경기도의 7개 교회가 대표로 소송비에 참여했다. '예배 회복을 위한 자유 시민 연대'(예자연)에서 정부의 예배 금지 명령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각각 두 법원에 제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7. 16 서울 행정법원에서 서울지역교회에 대해, 그리고 17일 수원지법에서 경기도 지역교회에 대해 잇달아 동일한 일부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졌다.

다시 한번 판시한 결정문의 중요한 내용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가) 종교시설에 종교행사의 전면적 금지로 인하여 그 기본권에 대한 본질적 침해 우려도 있게 된다.

나) 다른 다중 시설과 비교할 때 형평성에 어긋난다.

그러면서 석연치 않고 이해하기 힘든 예외규정을 두었다. 즉 교회예배 좌석수의 규모나 출석수에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무슨 근거에 의해서 인지 " 20명 미만 범위 내로 예배 참석 인원을 제한한다"라고 못을 박았다.

이에 대해 전직 국회의원이자 법 전문가인 모 변호사도 이에 대해 교회규모에 상관없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일이 있기 전 지난 해 5월 히브리대학의 한 교수는 이렇게 주장한 바 있다.

" ... 이 (코로나)위기의 시기에 정부가 국민을 감시하다가 규칙을 깨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이다. 오늘날 인류역사상 처음, 과학기술로 인해 모든 사람들을 항상 감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중략)

이쯤 되면 교회는 앞으로 분명한 처신이 필요하다. 더 이상 교회 길들이기에 침묵하는 것만이 선한 일인 것처럼 포장하는 구차한 변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차라리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저버렸음을 인정하는 게 정작한 고백이다. 스스로 비굴함을 피할 길 없어 ‘방역지침 준수’니 ‘지침을 어기면 교회에서 사람들이 떠나느니’, '이웃사랑' 이라느니 하는 말만 읊조리는 식상한 자기합리화의 몽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이에 앞으로 분명한 다음과 같은 근거에 의해 거룩한 저항이 필요하다고 본다.

1. 정부가 떠먹여다 준 ‘대면 예배, 비대면 예배’라는 말을 받아쓰기하지 말고 사전에서 지워야 한다.

그 이유는 최초 '대면 예배 금지?, 비대면 예배 허용?'이라는 신학적인 근거도 없는 해괴 망칙한 용어는 전 총리 정세균이 임의대로 만들어낸 정부 전용 용어이기 때문이다.

즉 '비대면 예배 허용'이란 말 자체가 얼마나 모순인가?인가를 알 수 있다. 비대면 예배란 말 자체가 교회 길들이기 위한 포석으로 억지로 지어낸 말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허용'이란 용어 속에는 '금지'라는 말을 이미 전제하고 있기에 용납할 수 없다. 언제 그들에게 예배를 허락받고 드렸던가? 더욱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제 1조 2항의 국민주권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오만방자하고 부패한 권력자에게서 볼 수 있는 비통한 말이다.

2. 이번 법원이 판시한 19명의 범위에서 허용한다. 에 자축해서는 안된다.

물론 지난 16일, 17일 법원의 판결은 앞으로 좋은 전례를 남길 수 있는 나름 의미있는 판시였다. 그러나 19명이라는 숫자에 만족하기에는 여전히 형평성에 충족하지 못하다. 지금도 호황을 이루는 식당을 보면 불특정 다수의 수십명의 손님들이 마스크 벗고 한두 시간 식사하며 좌담하는 게 예사인 것을 보면 그렇다. 8000여명이 지난 7.4 모인 민노총 현장은 안전했고, 매일 빽빽하게 밀찬된 지하철내 승객들은 또한 안전지대인가? 반면 교회는 길어봐야 예배하는 1시간 전후로 그 시간 내내 마스크를 착용하고 별 말도 없이 예배 후 귀가한다.

어느 곳이 감염에 안전한가?는 굳이 물을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근거로 예배 금지란 말인가? 19명은 어디서 나온 숫자인가? 따라서 앞으로 교회가 침묵과 굴종에서 일어나 이미 뜻있는 의학자와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조사해 놓은 그간 데이터의 근거를 정부 측에 제시하여 급기야 진검 승부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3. 감리교회 행정을 책임 진 수장들은 더 이상 침묵하짐 말아야 한다.

이번 법원의 판결을 받아내기까지는 그간 ‘예자연’의 수고와 전국 700여 교회의 행동하는 양심과 수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일에 침묵했고 기여하지 못한 교단 행정 수장들은 부끄럽게 여기고 지금이라도 헛된 공명심과 자기 극대화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돌아서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아울러 온전한 예배가 회복될 수 있도록 감리교회 자체만이라도 코로나에 쫄지말고 제 목소리 낼 줄 아는 그런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지난 7월 9일 감리회 평신도 7개 기관에서는 감리회 현안 문제에 분명한 입장과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는 성명서 발표 역시 귀담아 듣고 흘러보내지 말아야 한다.(KMC뉴스 2021. 7.9일자)

4. 교회마다 담임목사가 분명한 목회철학을 가지고 소신있게 코로나에 직면해야 한다.

교회를 향한 불편한 진실은 온전한 믿음보다는 정부의 발표에 기대거나 환경이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수동적 태도로 길들여져 왔다. 그러나 코로나는 이제 같이 가야 한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제는 그것에 대한 특징과 감염 원인, 그리고 예방책을 알게 되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부가 지하철, 버스, 관공서 등에서 방역 위반자에 대한 처벌 방송 등을 그치지 않고 있다. 게다가 강단에서 목사마저 그들과 똑같은 홍보 행동대장이 되기도 한다. 지금과 같이 계속 코로나로 국민과 교회를 쥐락펴락 하는 전체주의적 행태를 멈추지 않으면 도리어 정부가 공포정치, 코로나 정치한다.' 는 항간의 루머로부터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교회는 이쯤 정부 행태를 짐작했으니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4단계를 맞았다. 아무리 시대가 어둡고 무소불위의 권력이 난무할지라도 이럴 때일수록 교회는 복음으로 무장한 영적 야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코끼리 길들이기와 같이 코끼리의 야성은 잃고 만다. 또한 삼손이 블레셋이 보낸 들릴라의 꾀임에 빠져 나실인의 서약을 저버리고 여호와의 영이 떠나버리자 농락당하여 힘을 잃어 버린 것같이 교회는 세상 권력에게 주도권을 빼앗겨 영적 힘을 상실하고 만다.

그러므로 이제는 지, 정, 의 그리고 위로부터 성령의 초강력 기름부으심을 받은 영적 4차원으로 무장한 교회들이 지금의 방역 4단계를 영적 돌파(Breakthrough)하는데 하나된 힘을 결집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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