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와 예수님
소와 예수님
  • 이구영
  • 승인 2021.06.1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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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니와 비느하스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은 블레셋 군에게 대패를 당했습니다. 그 소중한 법궤도 빼앗겼습니다. 십계명 돌판이 들어 있는 법궤를 빼앗은 블레셋 군은 아스돗이라는 도시의 다곤 신당에 법궤를 보관하였습니다. 그러나 법궤로 인하여 다곤신당의 신상들이 부서지고 마을에 전염병마저 돌았습니다. 그래서 법궤는 아무 곳에도 환영받지 못하는 애물단지 전리품이 되었고 무려 7개월을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블레셋은 회의를 거쳐서 법궤를 다시 이스라엘 군에 돌려주게 되었습니다. 젖이 나는, 멍에 메어보지 않은 암소 두 마리가 끄는 수레에 싣어서... 그렇게 무사히 법궤를 운송한 소는 여물통을 선물로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작더미와 불 가운데 죽음을 당했고 번제물로 드려졌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예수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소는 사람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아기가 엄마를 따라 다니듯 송아지는 어미 소를 따라 다닙니다. 모성애가 많은 동물입니다. 송아지가 안 보이면 소는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데 이런 젖먹이 송아지를 떼어 놓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을 떠나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이 안타깝게 여겨지는 장면입니다. 우리를 살리시려 아버지의 품을 떠나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이 교차되어집니다. 가는 길도 정해져 있었습니다. 대로로 가야 했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면 안 되었습니다. 피곤하다고 쉴 수도 없었고, 풀이 있다고 먹으러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두 마리 암소가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단단한 팀을 이루어야 했습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릴 수 없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는 날까지 주어진 사명을 위해서, 그 사랑과 구원의 사역을 위해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분주하셨던 예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제자를 양육하시고,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를 치유하시고, 논쟁을 일삼는 이들의 모함에 조리 있게 가르치셔야 했던 예수님의 균형 잡힌 삶을 생각나게 합니다. 힘든 사역을 마치신 후에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 길만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는 길임을 아셨기에 묵묵히 망설임 없이 그 아픔의 길을 선택하십니다. 혈육의 정을 끊고 바르게 가야, 또 가서 죽어야 그것이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임을 알았기에 소는 그렇게만 합니다. 벧세메스로 가는 소로 인하여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사무엘의 인도를 받은 오합지졸 이스라엘 앞에서도 무너지게 됩니다. 결국 큰 승리의 첫 단추를 소 두 마리가 끼운 격입니다.

예수님을 닮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최우선이었기에 소중했던 것들을 뒤로 미루신 그 모습과 균형 잡힌 삶을 사시다가 그렇게 십자가를 선택하신 예수님을 닮고 싶습니다. 돌아가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서산 농장에서 키우던 소를 끌고 북한으로 가던 날이 생각납니다. 트럭에 실려 가던 소들은 아마도 새끼가 있었을 수도 있고, 가기 싫었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가서 죽은 소들 덕분에 개성공단이 생기고, 남북교류가 시작되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누군가 죽어야 생기 있는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나 봅니다.

죽지 않고 남 죽이려는 시대에 내가 죽고 남을 살리던 소들, 그리고 예수님을 닮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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