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이 되어야 보입니다
선장이 되어야 보입니다
  • 남광현
  • 승인 2021.05.0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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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이지만 서해안 바다는 아직도 서늘하다 못해 을씨년스럽다. 그런데도 바다로 나가야만 하는 시기이기에 미명 이전의 포구는 멀리서 보아도 분주하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에 고생하신다, 건강관리 잘하셔야 한다, 교회에서 안전을 위해 함께 기도한다. 등등 기회만 되면 교우분들과 나누는 대화의 레퍼토리이다. 그럴 때마다 교우분들이 “바다로 나갈 때 교회의 십자가와 예배당의 불빛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것을 보면 힘이 된다”고들 말씀하시기에 새벽마다 그분들과 함께 고민하고 선택한 교회 십자가에 불이 들어와 있는지, 혹시 밤새 문제가 없었는지 살피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매일 새벽, 예배당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칠흑같이 어둡고 싸늘하기 이를 데 없는 망망한 바다로 향하는 교우분들에게 교회의 빨간 LED 십자가와 바다로 향해 있는 예배당 창문으로 비치는 불빛이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해무(海霧)라도 일어나는 날에는 십자가와 예배당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그분들의 시선이 먼저 교회 쪽으로 향한다는 말씀을 들을 때 교우분들을 향한 중보 기도를 멈출 수 없는 근거를 찾게 된다. 바다에 해무가 일면 새벽 미명 전에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자동차 불빛도 가엽게 느껴질 정도로 앞을 분간할 수 없게 된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데 어떻게 바다로 나가시나요?”, “위험하지 않나요?” 이제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만큼 바닷길(항로)에 대해 이해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다. 몇 해 전 마을 어선들 사이에서 일어난 사고인데 바다에 나가 조업을 하던 어선을 가로질러 다른 어선이 타고넘어 간 사고였다. 다행이었던 것은 당시 조업을 위해 어부들이 선수와 선미 쪽에 있었고 사고 어선은 중앙 조타실을 타고 넘는 바람에 인사사고가 없었다는 것이다. 조업하던 배는 침몰했지만, 선원들은 모두 구조가 되었던 사고이다. 이때 마을 분들 사이에서 오갔던 말들이 인상적이었다.

“왜 그랬댜?”
“물러, 그러나저러나 사람 안 죽어 다행여...”
“그려...”
“길이 뻔한디 왜 들어 받었댜?”
“모르긴 몰라도 졸았것지…. 눈 감고도 찾아오는 길인디 거기서 사고를 낼 사람이 어딧것서”
“그려…. 배 가지고 나가 본 사람이라면 그런 일 있을래야 있을 수 읍지….”

마을 분들 모두의 이야기가 “뻔한 길”이라는 것과 그곳에서는 그런 사고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바다에 길이 있다? 물론 그 길로 직접 다녀보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뻔한 길”이라는 바닷길에 대해 대략 이해한다. 바다에도 다닐 수 있는 길과 가서는 안 될 길이 있다는 것이다. 가서는 안 될 길에는 이유가 있다. 그 길 밑에는 반드시 여(바위)가 있다는 말이다. 바다에 나가 조업을 하는 어선들에 가장 무서운 존재 중 하나가 바로 바다 밑에 숨어 있는 여(바위)이다. 바닷물로 덮여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소형 어선의 대부분은 FRP(Fiberglass Reinforced Plastic-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 소재로 건조되어 있어서 여와 부딪치면 배에 균열이 생기거나 깨지게 되고 침몰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을에서 인정받는 어부들은 적어도 보이지 않는 바닷길을 보이는 자동차 도로처럼 항해할 줄 아는 분들이고 이런 분들은 적어도 수십 년씩 바다를 일터 삼았던 어부들이다. 그리고 이분들의 농담 섞인 조언은 “목사님, 바닷길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선장이 되어 바다에 나다녀 보아야 보입니다.” 바닷길을 볼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선장이 되어야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참 흥미로운 말이었다. 그리고 생각 끝에 던져지는 질문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면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소개하지 못한다면 과연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바다에 나가는 일을 평생 업으로 삼아도 선장이 되지 못한다면 바닷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어부들의 말을 다시 한번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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