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을 결심하는 마태
이직을 결심하는 마태
  • 이구영
  • 승인 2021.04.23 0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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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직장인 마태를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레위라고도 하는 마태의 직업은 세리이었습니다.
.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는 청부업자들에게 맡겨 세금을 거두었습니다.
.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세리는 로마 정부의 앞잡이로 단지 세금을 받기만 하던 사람들로 학식은 좀 있었지만 지위는 매우 낮았고 사람들에게 천대를 받았습니다.
. 세리 레위는 로마 징세관의 하수인으로 가버나움에 세관을 내고 게네사렛 호수를 건너 헤롯 안디바의 영토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과 화물에 대해 세금을 받는 일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 물론 정해진 세금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 범위 내에서 더 거두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약육강식의 시대에 강자 편에 붙어서 부유함을 누리던 사람입니다.
. 그래서 당시 유대인들의 사회에서는 창녀들이나 이방인, 혹은 십계명을 어긴 죄인들과 함께 비천한 부류로 취급해서 상종을 안 하던 사람들이 세리 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중산층 이상의 생활이 가능했겠지만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신적으로 행복했을까요?
. 회사 내에서 선배와의 갈등, 후배들과의 갈등!
. 세금 안 내려는 사람들과의 싸움과 강제집행!
. 봐 줄 수 있는데 안 봐 주었다고 왕따 시키는 친구들과 동네 사람들!
. 그거 받아서 스스로 가지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로마에 충성을 하느냐고 야단치는 아저씨들!
. 일 잘하는 것도 좋지만 인심을 잃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아줌마들!
. 하나님을 믿는데 이래서 안 되는 줄 아는데... 그래서 그는 늘 고민하며 삽니다.

고민하는 직장인 레위!! 세리를 그만두는 일이 쉬웠을까요? 배운 게 이것입니다.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입니다. 다른 직업을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아는 사람들도 다 이 바닥 사람들입니다. 죄 의식은 있지만 그렇다고 그만 둘 수도 없고 계속 할 수도 없고... 심각한 고민 속에 살던 어느 날 그는 예수님의 제안을 받게 됩니다.
나를 따라 오라고! 삶의 방향을 한번 바꾸어보자고...

사람들은 너무 쉽게 마태가 예수님을 따라간 것처럼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부이었던 네 제자도 주님의 부르심에 아멘하고 순종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이직이라는 것이 그리 쉬운 결정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평소에 직장문제로, 더 정확히는 직장생활 하면서 겪게 되는 신앙적 양심의 갈등 문제로 얼마나 고민들이 많았을까요?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고민하며 기도하던 나날들... 이런 날들이 모아지면 질문이 많아지고 기도가 쌓이고 자꾸 하나님 생각이 나게 됩니다.

고민하는 직장인 마태!
아마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만둘 수도 없고, 다니려니 마음이 아프고, 양심이 괴로운 순간도 있습니다. 삶의 방향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고 싶어도 쉽지 않은 직장인 레위! 요즈음 이직도 많고 갈등도 많은 세상을 삽니다. 한번쯤 생각해 봅니다.
나의 직장생활은 행복한가?
삶의 방향은 잘 가고 있는가?
가정생활, 신앙생활, 직장생활에 조화와 균형은 잡혀있는가?
예수님께서 내 직장에도 오셔서 바른 삶의 방향을 잡아주시길 기도해봅니다.

[막 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제자가 된 후에 그의 이름이 마태로 바뀌었습니다. ㅎ대인의 관습에 의하면 일생에 중대한 변혁이나 전환을 경험할 때 이름을 개명을 하곤 했습니다. 어쩌면 레위는 받은 은혜와 사랑, 천국에 대한 소망과 이 땅에서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행복한 나날을 살면서 하나님께 고백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심지도 않았는데 너무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제가 노력하지 않았는데 너무 큰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마태라고 바꾼 듯 합니다. 마태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의 선물” 이라는 말입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천국백성으로서 새롭게 시작되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선물로 고백한 사람이 바로 마태입니다. 선물, 은혜이지요.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도 은혜를 알고 선물을 받았음을 압니다.
단지 마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마태는 은혜를 죽을 때 까지 은혜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선물에 대한 고마움이 사라지지 않았고 그래서 감사하며 그 은혜를 갚으며 살아간 사람입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은혜가 반복되고 선물이 반복되다 보니까 그것을 자신의 권리로 압니다. 참 어리석은 사람들, 패망해가는 사람들, 하나님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고 평생 갚으며 감사하며 살면 계속 은혜의 햇빛이 멈추지 않는데 은혜를 권리로 알고 까부는 거예요. 그러면 아웃이지요...

그의 직업은 세리이었습니다.
[마 9: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이런 사람이 제자가 된다는 것에 대하여 먼저 와 있는 제자들이 좋아할까요?
구약성경은 끊임없이 사랑하라고, 용서하라고, 회개하라고, 더불어 살아가라고 하시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안 살았습니다. 나라가 무너지고 땅을 빼앗기고 유리방황하며 불행하게 살지라도 사랑하는 거, 용서하는 거 화해하는 거, 공의롭게 사는 거, 이거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지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권의식이 있었고, 내가 늘 옳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선택된 것에 대하여 반감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 와중에 왕땅 당하면서 욕 먹으면서도 계속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이 마태입니다. 사람들의 이목을 때로는 무시하면서 진리의 편에 서고 싶었던 사람!

마태는 세관에 있다가 그냥 예수님을 따라간 사람입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업을 바꾼 사람! 그래서 결단의 사람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합니다. 좋은 직장 그만 둘 수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포기하고 더 높은 가치의 삶을 위해서 제자의 길에 섰던 용기의 사람 레위!! 이것이 내 길이다 싶을 때 그냥 포기하고 따라 나선 레위!!
하나님의 뜻이니까...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고민 끝에 확 집어던지고 바른 삶,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삶에 헌신에 레위! 부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그런 사람이지요.

그는 자신의 집에서 거대한 송별파티를 벌인 사람이기도 합니다.
[마 9: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예수님을 따라간 후에 그는 자신의 결심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 것이라고, 그리고 너희들 중에도 그러고 싶은 사람 있으면 예수님을 따르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큰돈을 들여서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삶의 방향이 바뀐 것을 기념하는 기념파티! 혹은 그동안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과의 송별파티를 거창하게 치른 사람이기도 합니다. 전에는 무익한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유익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던 레위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은 후에 12사도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 10:1-4]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그는 예수님 승천 하신 후 다락방 기도에 동참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행 1:13-14]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그는 또 신약성경의 첫 책인 마태복음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현존하는 예수님에 관한 기록 중 제일 완벽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책이 마태복음입니다. 예수님에 의해서 창조되는 믿음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책이 마태복음입니다. 처음에 마태복음은 초대교회의 신앙지침서로 활용되었었고, 마태는 이 설교집을 통해서 예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구약성경이 예언해 놓은 그리스도이시오, 우리들의 참 주인님이심을 설교하고 있습니다. 성경 쓰는 게 쉬운 것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긴 세월을 글로써 예수님을 전하는 일에 헌신합니다.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노년에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사람입니다. 이런 마태의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제 마음속에 제일 와 닿았던 장면은 왜 마태는 예수님의 음성에 그냥 아멘하고 순종하며 따라갔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너무 가볍게 성경을 읽는 버릇이 있습니다. 사실은 묵직하게 읽고, 자세하게 생각하며 읽어야 하는데...

레위는 어엿한 직장인입니다. 윗사람이 있고, 아랫사람이 있고, 동료가 있는 직장인 레위입니다. 연봉이 꽤 높은 직장이고, 비록 몸도 피곤하고 욕도 많이 먹지만 그런대로 중산층 이상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직장입니다. 그런데 그 이면에 고민하는 직장인 레위의 모습을 상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입구조는 있지만 주변의 시선이 좋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살면서 양심을 속여가면 돈을 버는 것에 대한 가책도 많습니다. 손가락질 하는 동네 사람들의 눈총도 무시할 단계는 이미 지났습니다. 어릴 적 함께 자란 선배, 후배, 친구들도 이제는 매국노가 되어버린 자신을 사람 취급하지 않고, 그럴수록 레위도 화가 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마태복음의 저자인 마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과정을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은 각각 따로 떼어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부르신 이야기는 그냥 한 단락입니다. 어떤 제자들을 부르신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세리 마태를, 레위라고도 부르는 그 마태를 부르신 이야기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이 따로 기록하고 있을까요? 어쩌면 그 당시 예수님께서 마태를 제자로 부르신 사건은 너무 충격적이었고, 이해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을 수 있습니다. 세리가 누구입니까? 로마 정부를 대신해서 세금을 징수하는 사람들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매국노이었고, 착취자들이었습니다.

일제시대에 일본 놈 앞잡이처럼 그렇게 비난과 저주의 대상이 세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세리가 예수님의 제자그룹에 끼게 되었습니다.
[메시지 성경 막 2:15-16]
“나중에 예수와 그 제자들이 평판이 좋지 않은 무리와 함께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보기에는 아닐 것 같지만 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그분을 따르고 있었다. 종교 학자와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그런 무리와 어울리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따졌다. “쓰레기 같은 인간들과 친하게 지내다니, 이게 무슨 본이 되겠소?”

기록된 그대로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 쓰레기 같은 인간들, 본이 되지 않는 사람들!! 그만큼 거부감이 큰 사람 레위! 이 레위가 그것을 몰랐을까요?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직업적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할까?
오늘의 직장인들처럼 이직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혹은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서, 혹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직에 대한 고민을 안고 살아갑니다. 저라고 안 그랬을까요?
저는 목사라는 직업이 처음부터 맘에 들고 하고 싶었을까요? 제 초등학교 시절의 꿈은 의사이었습니다. 물론 제 꿈은 아니었고 엄마에 의해 강요된 꿈이지요. 의사가 제일이라고. 제 성품으로 보면 의사가 좋겠다고, 해 보라고, 그래서 늘 생활기록부에 의사라고 적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면서 알았습니다. 그 의사는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지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병원에 가보면 늘 아픈 사람들만 상대해야 하는 의사가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꿈을 접었습니다. 그 뒤로 제 꿈은 법관이나 정치인이었습니다. 아버지에 의해 강요된 꿈이지요. 제 꿈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또 알게 되었습니다. 그거도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법관이 되면 늘 죄수들하고 상대해야 하잖아요.
피곤할 것 같아요, 착한 사람들 하고 살아야지 뭐 그 나쁜 놈들하고 살아....

그 뒤로 제 꿈이 변했습니다. 교회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참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사명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내 인생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꿈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던 중에 신학대학을 가게 되었고 동기들보다 3년 늦게 늦깍이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사로 살면서도 늘 고민이 많습니다. 꼭 목사만 해야 하나? 교수도 있고 선교사도 있고 교단이나 선교 단체등에서 일하는 행정목사도 있는데 난 그게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이직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묻기도 하고 상담도 해보고,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친구들이 미국에 자꾸 유학을 가고, 어떤 목사님께서는 내가 미국 유학가기에 적당한 영어점수만 맞아 오면 4년 장학금 주는 대학교와 대학원에 추천해 주겠다고도 하셨습니다. 아이들을 미국에서 키워볼까? 그래서 새벽기도 끝나면 매일 마다 영어학원엘 다녔습니다. 어느 정도 무르익어 갈 즈음에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미국행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냥 목회 열심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또 접었습니다. 어느 정도 지나고 지치고 힘이 들면 또 마음이 움직입니다. 미국이 아니면 독일에 갈까? 그래도 목사가 박사학위는 있어야지, 이래 무식해서 목사 노릇 제대로 하겠나? 독일에 유학을 가야겠다. 그래서 독일어 학원에도 다녔습니다.
데어데스뎀덴 디데어데어디 다스데스뎀다스 디데어덴디..
독일어 관사 변화를 외우면서 독일행! 그런데 기도하면 또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많이 망설여지는 중에 또 깨달았습니다. 아하! 하나님께서는 내가 박사학위 받는 것 보다 평범한 목회자가 되기를! 믿음 약한 사람 강하게 해 주고, 방황하는 사람 쓰러지지 않게 잘 잡아주고, 지옥 갈 사람들 천국 가도록 도와주는 것을 더 원하시는 구나! 또 박사학위도 논리적이고 공부 좋아하고 책상 좋아하는 사람들이 받는 것이지 나 같이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구나!! 깊이 깨닫고 다 포기했습니다. 에이 그냥 이대로 살자! 은퇴할 때 까지 열심히 하자!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면되지 뭐! 남하고 비교할 것도 없고.. 나 행복하면 그만이지!! 그랬더니 여기 저기서 부흥회 오라는 곳도 늘어나고, 목회도 잘 되어갔습니다.

어렵다는 시대, 교인이 점점 줄어든다는 시대에 우리교회가 꾸준히 성장해가기 시작했습니다. 100여명이 좀 넘으니까 여기 저기에 제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90년대에 교회 개척해서 100명 넘는 교회가 될 확률은 10분의 1도 안됩니다. 이구영 목사 목회 잘한다고, 어떤 목사님은 저 보고 목회머신이라고! 목회에 최적화된 사람이라고 극찬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소문이 나기 시작하니까 50전 후에 여기 저기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목사님 저는 어디에 있는 어느 교회 000장로입니다. 이번에 우리교회 목사님이 은퇴하시는데 이 목사님을 우리교회 후임자로 생각을 하는데 오시면 좋겠습니다.” 꽤 크고 좋은 교회들에서 초빙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어떤 목사님 표현으로 서울을 비롯한 인천과 수도권에서 어지간히 큰 교회 담임목사님 초빙문제가 나오면 제가 늘 1순위였다고... 월급도 많이 준다고, 노후도 보장해 준다고, 자녀들 교육비도 다 책임져주고 그저 좋아하는 목회만 열심히 하시면 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게 된다고.. 명예도 있고, 폼도 나고... 소위 말하는 교단 내에도 헤드 헌터들이 있습니다.

우수한 사람들을 더 큰 교회로 소개해주는 사람들!
집에 있을 때 그런 전화가 더러 오니까 집 사람이 뭐냐고? 어느 어느 교회에서 나 보고 이력서 내 보라고 한다고.. 그 교회가 어떤 교회인데? 우리교회 보다 몇 배는 더 크지... 일 년 연봉으로 배 이상은 줄걸! 아니 세배는 줄걸! 우리 집사람이 그러지요 이력서 낼 꺼냐고?
목사라는 직업은 참 묘해서 목회는 목사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사모들도 함께 해야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월급은 한 사람분 받고 일은 두 사람이 해야 하는게 목사예요. 돈 생각하면 안 좋은 직업이지요. 사모의 역할이 참 중요해요, 어떤 교회는 사모님 때문에 부흥하고 어떤 교회는 사모님 때문에 쇠락의 길을 걷기도 합니다. 그래서 헤드 헌터들이 사모님 면접도 같이 봅니다. 교회 이력서를 내고 통과되어서 교회의 중요한 인사문제 결정권자들과 만날 때 사모님을 같이 면접합니다. 집 사람이 이력서 낼 것이냐고 물어보면 제가 늘 집사람한테 이야기 합니다. 나는 합격할 것 같은데 사모 점수가 안 나올까봐 못 내!! 그래서 아직 한 번도 못 내 봤어요...

지난주에도 우리 집사람에게 그랬습니다. 내가 변화를 좋아하고 바꾸고 치우는거 참 좋아하는데 생각해보니까 한번 다닌 생명나무교회 지금껏 29년째 다니고 있고, 마누라 안 바꾸고 지금껏 사는게 기적이다!! 직장인들에게 있어서 이직의 경험, 이직에 대한 갈등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고민하는 직장인이지요..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이직에 대한 경험이 많이 있습니다. 저처럼 한 교회에서 시작해서 지금껏 근 30여년을 한 직장에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저는 행복할지 모르지만 저 밖에 못 만나본 여러분들은 슬픈 일일 수도 있습니다.

자!! 왜 저는 이직을 하지 못했을까요?
저도 고민하는 직장인 맞아요. 요즘도 고민합니다. 언제 그만둘까? 목사는 은퇴가 70세입니다. 교단적인 추세는 73세로 늘리자고 자꾸 그래요. 교인도 줄고 젊은 목회자들은 함량이 안 되고, 고령화 교회에 맞는 목사는 늙은 목사라고.. 수명도 길어지니까 더 해야 한다고... 그런데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원은퇴가 가능한 나이는 65세입니다. 만 65세가 되면 은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다고 쉽게 떠날 수 있던 사람들은 그만큼 고민이 깊었던 사람들 인거 아세요? 그냥 예수님께서 부르시니까 따라갔다?? 그거 아니예요. 평소에 직장문제로 얼마나 고민이 많았겠습니까? 이직 / 은퇴?? 좀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냥 이직이나 돈을 생각하지만 레위는 삶의 방향을, 하나님의 심판과 상급을 생각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돈 때문이 아니라, 일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동료과의 갈등때문이 아니라 레위는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내가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내가 지금 만나고 지내는 이 사람들이 더 이상 내 삶을 하나님께로 온전히 이끌어갈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떠나갑니다. 돈은 벌었지만, 일도 재미있지만 지금 이 길을 계속 걷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어지게 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멈추고 먼지까지도 털어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갑니다. 이직이 좋은 것만도 아니지만 지금 레위는 내가 가는 이 방향이 틀렸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오늘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돈을 벌지만 신앙의 양심이 괴로운 길 보다는 좀 가난해져도 신앙의 양심이 편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길에 서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고민이 됩니다.

어찌해야 하나.. 놓아 버리기는 아깝고, 계속하기는 부담스럽고... 고민하고 기도하는 레위!
그때 레위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 즈음에서 삶의 방향을 한번 바꾸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떠나 나와 함께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보자! 떠나 나를 따라 천국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보자! 돈이 좀 적어도 / 힘이 들어도 /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하늘 상급을 바라보며 사람 눈치 보지 말고 믿음, 소망, 사랑의 길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길을 선택하자!! 그때 레위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그래 그렇게 하자!! 고민하던 직장인 레위는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가게 됩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르시니 그냥 따라간 것이 아닙니다. 나름대로는 다 고민하며 기도하는 직장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안드레를 부르실 때 그들도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자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성경을 너무 쉽게 읽다보면 성경의 생략부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내용이 있는데 다 기록할 수 없어서 생략된 부분들을 놓치면 성경의 의미를 오해할 수 있습니다.
[요 20:30-31]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내용이 너무 많지만 줄이고 줄인 내용이 우리 앞에 있는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런 질문이 가능합니다. 왜 그 네 제자는 예수님의 부름에 쉽게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갔을까? 지금 직업이 없는 것도 아니고, 구직을 하는 중도 아니고 어부생활 잘 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그거 그만 두고 나를 따라 방랑의 길을 가자고 하실 때 그들이 아무 생각 없이 쉽게 따라갈 수 있었을까요? 적어도 고민한 흔적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들은 직장 안에서 천국백성으로 살려고 나름대로 고민하는 사람들입니다. 돈을 더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서, 오늘 보다는 더 나은 내일의 건강한 신앙생활, 가정생활을 위해서 기도하며 고민하는 사람들!!

여기에 우리 천국백성의 길이 있습니다. 직장에서건, 가정에서건 지금 내 가고 있는 삶의 방향을 자꾸 점검해 보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천국백성이잖아요! 그래서 이건 아닌데 싶을 때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말씀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우리들 직장인에게는 있습니다.
- 내가 오늘 빛이고 소금이 되고 있는지
- 축복하는 인생을 사는지 끌어내리는 인생을 사는지
- 시기하는 인생을 사는지 박수쳐주는 인생을 사는지
-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실천중인건지 아직도 자기 사랑에 갇혀 있는지..
- 돈 벌겠다고 몸 상하고, 마음 상하고 있지는 않은지
- 돈 벌겠다고 성공하겠다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가정에서 멀어지고, 교회에서 멀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고민 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삶의 방향성의 문제를 놓고 고민해 보셨나요? 삶의 속도를 놓고 고민해 보셨나요? 레위는 결코 쉽게 예수님을 따라 나선 것이 아닙니다. 그는 고민하던 직장인이었습니다. 순종은 고민 끝에 나오는 거예요. 그냥 막 나오는 게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처럼, 직장생활하면서 내 삶의 방향이 틀린 것을 알고 죽음 이후에 마주하게 될 하나님과의 만남을 준비하면서 삶의 방향을 수정해 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오늘 우리는 고민하며 사는 직장인 마태의 후배들입니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결단하며 하나님 앞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면서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제자의 길을 가야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직을 생각하건, 은퇴를 생각하건, 아니면 지금 직장을 계속 다니시게 되건 상관없이 우리에게는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삶의 방향에 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직장인의 삶에 관한 기준입니다. 내가 이 직장이나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까? 가정이 행복할까? 교회에 도움이 될까? 내 능력이 부족함을 알고 내 지혜와 인맥이 부족함을 알기에 오늘도 기도합니다.

성령님 도와주세요! 길을 열어주세요! 어리석은 결정보다는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싶습니다. 분별의 영을 주시옵소서!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 동기의 순수성 앞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마태처럼 제자들처럼 직장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 을 지키기 위해서 고민하면서라도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천국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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