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값 썰어야 하는데 어쩐대요...
입값 썰어야 하는데 어쩐대요...
  • 남광현
  • 승인 2021.04.1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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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사님, 이번 주 속회가 권사님 댁인 것 아시지요? 몇 시에 가능하실까요?” 사모의 통화 소리가 들린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말을 들을 수 없었지만, 통화가 길어지는 것을 보니 여의치 않음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어떤 약속도 지켜지기가 쉽지 않다. 코로나 19의 영향도 없지는 않지만 어장 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맘때면 교우분들과의 약속에 관해 듣는 말이 있다. “예 목사님, 그날은 바람이 인다고 하니까 모일 수 있습니다. 근데, 바람 일지 않으면 나가야 합니다. 목사님, 그날 봐서 교회로 올라가겠습니다.” 놀랍게도 어선을 가지고 계신 교우분들의 답변이 똑같다. 이런 때마다 목사로서는 약속이 성립된 것인지, 아니면 약속 날짜를 미뤄야 하는지 고민할 때가 많다. 또 하나의 재미난 경험은 어장 철과 비어장철에(필자 개인의 구분임) 교우분들의 통화 형태가 다르다는 것이다. 한여름과 겨울, 교우분들과의 전화통화는 충청도식이다. 근데요, 글쎄, 그래요. 끝이 없다. 그러나 봄, 가을 통화는 예, 아니오. 군대식이다. 그만큼 육지에 올라와서도 할 일이 많다는 이야기다. 감사한 것은 목사의 전화는 아무리 바빠도 받아 주신다는 것이다.

봄부터 가을 어장 끝날 때까지 어촌의 우리교회는 일명 ‘번개’ 모임이 잦아진다. 갑자기 바람이 일어나면 사전에 약속이 없었어도 그날이 모임이 가능한 날이 되는 것이다. 비가 와도 소용이 없다. 바다에서 그물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날이 맑아도 바람이 불면 조업을 할 수 없기에 바다에 나갈 수 없다. 그래서 ‘번개’ 모임이 가능하다. 요즘은 옛날 같지 않게 핸드폰 애플리케이션이 잘 개발된 탓으로 바다 날씨 예보가 대부분 잘 맞아 모임이 수월한 편이기는 하다. 그러나 어선의 크기에 따라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기에 교회의 중요한 일들은 함께 모여 해결하는 것이 어렵다. 예배 참여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즈음에는 교회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교회와 교우들 간의 관계를 지속시키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감당해야만 하는데 주로 각 가정에 교회 소식을 전하며 스스로가 복음을 위한 교회공동체의 구성원임을 자각하게 하는 일이다. 이 사역은 대부분 심방과 가정 예배로 이루어지는데 바다 일이 워낙 위험하고 힘들어서 교우분들의 입장이 우선 고려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다의 어장 일이 바빠지는 시기가 되면 예배를 통해 교우들의 신앙을 살피는 일이 교회로서는 중요한 사역이기에 사모의 역할이 커지게 된다. 그렇기에 사모의 전화는 늘 바쁘다. 그리고 와중에 필자의 귀에 들렸던 통화 내용이 바로 “입값 썰어야 하는데 워쩐데유”라는 것이었다. 삼각망 어장과 달리 통발 어장은 근해 어장에서 박하지라는 돌게와 놀래미, 우럭 등 작은 생선들을 잡는 어장이고 이 어장은 매일 바다에 나가야 하는 어장이다. 그리고 어장 특성상 새벽 물때에 맞추어 나가기 때문에 일정치 않은 생활형태가 문제가 된다. 아마도 속회 순서가 권사님 가정이라서 사모가 연락을 취한 것이리라. 돌아오는 답이 이번 순서는 어렵고 다음 주에나 가능하겠다는 답을 전해 들은 듯했다. 입값 써는 일이 힘든 일이라는 것쯤은 필자 내외가 알고 있다. 냄새도 고약하고 지저분하기 때문에 되도록 권사님 내외 아니면 보여주기를 꺼리는 일이다. 하필 그 일을 하고 있기에 예배가 어렵다는 것이다. 입값은 주로 정어리나 전어 등을 사용하는데 통발 어장에 있어 입값은 돌게와 잡어들을 모이게 하는 필수요소이다.

입값에 정성을 기울이는 이유는 아마도 어부의 미안한 마음이리라 여겨진다. 어부의 생계를 책임져 주는 바다 어장에 대한 감사함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감사를 미안함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어부, 그 어부가 바로 우리 권사님이다. 그리스도인의 감사, 교회공동체 안에서는 당연한 모습이라고들 말하지만 왜 그런지 자꾸만 그리워지는 고백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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