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아펜젤러 남부순행일기 8월 19일 월요일
제4화 아펜젤러 남부순행일기 8월 19일 월요일
  • 리진만
  • 승인 2021.04.08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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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 월요일, 원쥬 강원도

강원감영 포정루 Ⓒ GCAH Digital Gallery
강원감영 포정루 Ⓒ GCAH Digital Gallery

우리는 아주 평온하고 쉼이 있는 안식일을 지평(砥平, 조선시대 지평현이 소재한 곳으로 현 양평 동쪽의 용문면, 지제면, 단월면, 청운면, 양동면 등은 砥平 歷史에 속한다.)이라는 작은 현에서 보냈다. 그곳에는 150여 가구가 있었으며 그곳은 작은 샛강과 기름진 땅 가운데 집들이 있는 산골 마을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새벽 3시에 채근하여 먼저 보냈지만, 우리는 5시 이후에야 출발했다. 우리는 이곳(당시 아펜젤러 일행은 평해대로를 이용했을 것으로 보이며, 지평에서 60리 거리는 지평~고송~양동~솔치 고개를 넘어 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안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주막에 오기까지 지평에서 60리를 나아갔다. 도로는 길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험하고 경사가 심해, 말이나 다닐만한 좁고 깊은 계곡 길을 지나왔다. 이 긴 계곡은 나에게 북쪽의 송도로 가는 길을 생각나게 했다. 토지는 물론 그리 비옥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경작하는 지역이었고, 곡물 상태는 좋아 보였다. 우리는 아름다운 작은 냇가 둑 위에 있는 지저분한 주막에서 식사하고 수영을 즐겼다. 이 계곡 길은 나무가 울창해서 나아가기가 힘들었다.

오늘 오후 우리는 여기까지 30리를 왔는데, 여기서부터 10리는 말(馬)로 이동하기가 험한 길이었지만, 우리는 강원도의 수도를 보기를 갈망했다. 나는 내가 낮은 언덕에 도착했을 때 처음 보았던 대동강 둑 위로 펼쳐진 커다란 도성 평양의 모습을 추억하게 했다. 우리는 긴 여행의 보상을 받은 것이다. 오늘은 아니지만. 우리는 도성의 성벽을 찾기 시작했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뭔가 찾으려고 도성을 둘러 봤다. 거기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분지 한가운데 1천여 주택이 있었는데 이는 다른 목적에는 사용된 적 없고 단지 주거용으로만 사용되었다. 주도로는 오늘만의 냄새를 풍겼고, 매일, 매주, 매달 다른 냄새를 풍길 것이다.

우리가 경험한 강력한 모습은 최소한 1년 내내 쉽게 기억될 것이다. 집들은 형편없이 지어졌다. 사람들은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고 개들까지도 다마스쿠스의 개들처럼 누워있었다.

관찰사(觀察使)는 이곳에 거주하고 있고 물론 목사(牧使)도 그러하다.(당시 원주에는 강원감영과 원주목 아관이 있어 관찰사와 목사가 있었다.) 우리의 명함(조선에 온 지 1년밖에 안 되는 존스는 그의 통역관 강 씨(강재형)한테 한자로 이름을 지어달라 해서 붉은 색지에 명함을 붓글씨로 써서 갔다. 그가 기록한 당시 명함 크기는 세로 18㎝ 가로 13cm 크기였고 한자로 4자였다. 즉, 영문으로 Cho Chey Chong Sye 는 George 趙指, Jones 悰時 였을 것이라 David Kim은 추정했다.)을 그 두 분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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