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가로질러 못 건넙니다
지금도 가로질러 못 건넙니다
  • 남광현
  • 승인 2021.04.03 0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촌 마을이 어구 정리하느라 분주하다. 뱃동사(선원)들이 전국 각처에서 찾아드는 바람에 마을이 사람 사는 동네로 바뀌었음을 느끼게 하는 계절이 온 것이다. 어촌교회는 예배나 기도회에 빈 자리가 보이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다. 어촌교회에 부임하고 몇 개월 되지 않아 경험했던 일인데, 주일 예배에 빠짐이 없었던 권사님, 집사님들이 한 분, 두 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에는 매우 당혹스러웠는데 딴에는 혹시, 설교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목사의 기도 분량이 부족해서 실망했는가? 그것도 아니면 교우들과의 관계를 잘못했는가? 온갖 생각에 더해 표현하지 못하는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것이 초짜 어촌교회 목회자의 모습이었음을 오래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2월 중순부터 준비되는 어장 일이 3월 중순 넘어지면 바다에 나갈 채비를 끝내게 되고 물때와 수온에 따라 3월 말이나 4월 초순부터 바다에 삼각망이라는 어망을 넣는 일이 시작된다. 이 어망은 주로 자연산 광어와 도미를 산 채로 잡는 그물인데 장대는(길이-삼각망 그물의 마디를 새는 용어) 65장대(약 60m), 통 안 장대는 10장대(약 10m) 정도 되고 삼각형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즉 길이가 약 60m, 폭이 약 10m 정도 되는 삼각뿔 3개를 붙인 모양의 그물이다. 어장을 바다에 넣게 되면 보유하고 있는 그물 틀 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3일에 한 번 꼴로 물을 보러 가게 된다. 여기서 “물을 보러 간다”는 말의 의미는 바다 밑에 넣어 놓은 삼각망 어장에 잡혀 있는 자연산 활어를 수합하기 위해 바다로 나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약 두 달여 동안 바다에 넣어 놓은 어장을 관리하며 활어를 수확하게 된다. 이때 선장과 뱃동사들은 신경이 매우 예민 해 지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어장에 든 활어들의 값을 높이 받기 위해 생채기 없이 수합하는 일을 물때에 따라 쉼 없이 반복하기 때문이다. 사실 어장에 아무리 많은 자연산 활어들이 들어 있어도 생채기가 나면 제값을 못 받는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선장과 뱃동사들은 목숨을 걸고 수고한 것에 대한 보상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이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장 일이 한창일 때 마을에는 사람들 간에 갈등은 있지만, 상대적으로 큰 싸움은 없다. 이것은 분명 어촌 주민 모두가 바다에 나가 일하는 어부들의 심정을 헤아리며 배려하는 모습 때문이리라!

교우분들도 예외는 아니다. 어선을 가지고 있는 교우분들도 바다 일이 시작되면 마을 어부들과 같이 밤·낮 없이 어장을 관리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는 어선을 운용하는 어부들의 가족들도 함께 분주해지는 시기이기도 한데, 교우분들도 여느 어부 가족들과 같이 매우 분주하다. 왜냐하면, 바다에서 할 일과 육지에서 할 일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선이 바다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되면 가족들은 포구로 나가 귀항하는 어선을 마중한다. 이즈음에는 필자도 포구에서 교우분들을 심방하는 일들이 있는데 종종 새벽예배 후 마을 포구로 내려가기도 한다. 밤새 물을 보고 새벽에 들어오는 배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날 역시 새벽예배 후 포구로 내려갔고 멀리 권사님이 보였으며 기쁜 마음으로 도로를 가로질러 권사님이 계신 곳으로 가려 했는데 때마침 어구를 실은 트럭이 포구로 향해 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 새벽에 필자는 아주 난감한 일을 경험했다. 어마어마한 욕을 들었다.

당황해하는 필자에게 여 권사님께서 웃으시며 “목사님 그냥 교회로 올라가세요, 목사님이 아직 잘 모르셔서 그래요” 라고 말씀해 주셨다. 도로를 가로질러 다니는 일이 바다로 나가는 어부들에게 얼마나 큰 실례인지 그때는 몰랐다. 이 이야기는 몇 주 동안 교회 점심식사 시간에 담소의 메뉴가 되기도 했다. 당시 연세 드신 권사님께서 “목사님, 나는 지금도 신작로를 가로질러 건너다니지 않아요. 아무리 급해도...”라고 말씀해 주시면서, 바다에 나가는 사람들이 신념처럼 지키는 일이 있는데 그것 중 하나가 바다에 나갈 때 여자가 길을 가로질러 가면 그날은 바다에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재수가 없어 배 사고가 나든지, 빈 어장을 거두게 되기 때문이다. 뒤에 들은 말인데 그날 그분들은 바다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교우분들 모두가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일이라고들 말하지만, 마을의 부녀자들이 마을 중심도로를 가로질러 건너는 일들을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것도 어부들을 위한 어촌지기들의 사려 깊은 배려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소망하기는, 오늘 그리스도인들의 배려가 세상 속에서 부활의 소망으로 아름답게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