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심정, 성도의 심정
농부의 심정, 성도의 심정
  • 신상균
  • 승인 2021.04.01 0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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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일 토요일 오전 9시, 교회 밭에 퇴비를 주기로 했습니다. 나도 덩달아 옷을 갈아 입고 밭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미 성도님들이 와서 퇴비를 뿌리고 있었습니다. 성도님들은 퇴비를 뿌리며 묻습니다. “목사님, 여기다 뭐 심을거예요?” 저는 고구마를 심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성도님들은 한마디씩 합니다. ‘고구마가 잘 되려면 비닐을 씌워야 해요. 고구마가 잘 되려면 품종이 좋아야 해요. 고구마가 잘 되려면 땅이 좋아야 해요.’ 저마다 고구마 농사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고구마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제 마음도 두근거리기 시작합니다. 우리 교회 밭이기에 성도님들이 다함께 농사를 짓지만, 모든 것들이 저의 이름으로 진행되기에 남다른 책임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구마에 대한 성도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마음속에는 농사에 대한 간절함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늘 농사를 지었다면 어느 정도 농사에 대한 여유가 있었겠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기에 그저 성도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저 잘되기만 바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가을에 농사가 잘 되겠지. 고구마가 많이 열리는 풍년이 될거야. 고구마 맛이 기가 막힐 거야. 고구마 농사가 잘되서 이문이 많이 남으면 뭐에다 쓰지?’ 즐거운 고민을 하면서 밭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만약 비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혹시 벌레가 생기면 어떻게 하지, 고구마가 열렸는데 너무 작으면 안될텐데, 고구마가 너무 풍년이어서 가격이 폭락하면 많이 열려도 소용없쟎아.’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 본적 없는 생각이 막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자신감도 생깁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거야. 그래도 교회 밭인데, 목사가 관심을 가지고 퇴비줄 때부터 이렇게 노력하는데, 하나님이 잘 되게 해 주시겠지.’

그러나 한편으로는 ‘만약 농사가 안되면 어떻게 하지, 성도님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저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농사 잘되게 해 주세요. 이번 농사 풍년 되게 해 주시고, 판로도 잘 열려서, 많은 소득을 얻게 해 주세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 기도는 제가 많이 드렸던 기도였습니다. 농사짓는 성도님들의 가정을 심방할 때 그분들의 농사를 위해 기도했던 내용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다를까요? 심방하면서 드렸던 기도와, 퇴비를 뿌리고 나서 드리는 기도의 질이 왜 이렇게 다를까요? 내 삶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농사가 나의 삶이었고, 나의 소망이었고, 나의 미래였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했을텐데, 농사가 나의 삶이 아니었기에 이렇게 간절한 기도를 드리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목회는 나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는 성도님들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성도들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고통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서 12장 15절에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했습니다. 성도님들은 목사를 담임목사님이라 존경하면서 첫 수확이 생기면 목사님에게 제일 먼저 가지고 왔는데, 목사였던 나는 그분들의 심정을 잘 몰랐던 것 같았습니다.

오늘도 사택 문 앞에는 파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제일 처음 농사하여 목사에게 가져온 권사님, 이제야 그분들의 심정을 알 것 같습니다.

어느덧 농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금년에도 우리 농사짓는 성도님들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릴까요? 그분들을 생각하면서 더욱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성도님들의 농사를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른 비 늦은 비를 내려 주시고, 벌레 먹지 않게 하시고, 수확이 잘 되어 일년동안의 수고가 기쁨으로 변하게 하옵소서.”

오늘은 그 어느날보다 식사기도가 길었던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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