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묵직한 사랑
요셉의 묵직한 사랑
  • 이구영
  • 승인 2021.03.05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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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사랑의 시대에 묵직한 사랑을 생각합니다. 거리에서 흔히 맞닥뜨리게 되는 젊은이들의 포옹이나 입맞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묵직한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이나 예수님의 사랑하심을 떠 올리기에는 너무 아늑하지만 요셉이, 형들을 사랑하며 보여주었던 묵직함을 닮아보고 싶습니다. 요셉의 사랑은 말에 있지 않았습니다. 어루만짐도, 쓰다듬어 줌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랑은 표현이 되었고 드러났고 흘러 넘쳐 많은 이들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습니다.

1. 그의 사랑은 용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형들의 회개나 고백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마치 선악과를 따 먹고도 회개할지 모르는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입혀주셨던 하나님의 사랑처럼 그렇게 덮어줌이 있는 사랑이었습니다. 그가 예쁘다거나 그의 삶이 의로워져서 용서한 것이 아닙니다.
[사 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왜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합니까? 그 사람이 의로워서! 그 사람이 예뻐서! 아닙니다.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도말이라는 말은 완전히 덮어 없애버린다는 뜻입니다. 그 죄를 기억하고서는 내가 힘드니까. 내가 너를 사랑하며 살수 없으니까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 너를 용서하고야 말리라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입니다.
사랑이신 그분의 결단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적 결단입니다.
너를 사랑하고야 말리라!!
너를 용서하고야 말리라!!
용서가 먼저 있었고, 그 용서에 대한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죄의 고백과 용서의 확신, 회개와 결단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요셉은 자신을 죽이려한 형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대접합니다. 말 한마디 안했지만 묵직한 마음은 이미 용서를 선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그의 사랑은 책임감으로 나타납니다.

먹고 살기 힘든 시대!
가뭄에 가뭄이 이어져 생필품도 구하기 힘들고,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때에 요셉은 형들에게 근사한 식사를 대접합니다. 굶어죽어도 쳐다보고 싶지 않은 형들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이미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행한 자신의 삶을 책임져주시고 인도하셔서 오늘의 영광에 이르게 하심을 믿기에 요셉도 받은 그 사랑을 흘러내리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랑은 죄 많은 형들의 삶을 책임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창 50:20-21]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부모!
무책임한 남편이나 아내!
무책임한 자녀나 회사직원들! 모두가 죄인들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묵직하신 사랑은 내 사랑의 대상을 향한 온전한 책임으로 나타납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와 룻을 책임질 이유가 없었지만 그들을 향한 사랑을 ‘책임져줌’으로 표현합니다. 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에게 먹을 것과 재물을 나누어 줍니다. 그들을 사랑하기에...

3. 요셉의 사랑은 믿어줌으로 드러납니다.

요셉은 도데체 형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믿을만한 말이나 어떤 행동을 본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아버지를 속이던 사람들입니다. 아버지의 양을 허락도 없이 잡아먹던 사람들입니다. 동생을 죽이려던 사람들이고 동생을 노예로 팔아버린 사람들입니다. 분노와 폭력성이 대단해서 세겜성 사람들을 무참하게 죽이고 노략했던 사람들입니다. 함께 산다거나 함께 먹는다거나 함께 잠을 잔다는 것이 굉장히 꺼림 찍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그 형들과 식탁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진수성찬을 차려서 형들을 대접합니다. 요셉은 형들을 믿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속일지언정 나는 그들을 속이고 싶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삶을 믿어주며 격려해주고 싶었습니다.

♪♪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믿지 못하면 참지 못합니다.

나아지겠지... 회개하겠지... 알게 되겠지...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래서 믿음을 가지고 참아주는 것 그것을 사랑이라고 그럽니다. 남편에 대하여, 아내에 대하여, 교우들에 대하여, 목회자에 대하여, 동료나 후배, 선배나 상관에 대하여 믿고 참아주는 것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나에 대하여 참아주시고 기다려주시고 믿어주실까요? 전혀 견적 안 나오는데... 사랑하시기에 믿어주시고 안타까이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것은 단순히 손잡고 다니는 게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묵직한 사랑은 용서하고, 책임져주고, 믿어주고... 이런 사랑 받아보셨나요? 이런 사랑 해 보셨나요?

요셉의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자꾸 하나님의 사랑이 생각이 납니다. 내가 받아온 하나님의 사랑! 용서해주시고, 믿어주시고, 책임져주셔서 잘 살도록 인도해주시는 그 따뜻함! 이런 사랑 받는 사람, 이런 사랑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길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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