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들의 3가지 모순
동성애자들의 3가지 모순
  • 민돈원
  • 승인 2021.03.02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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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원화 사회가 되면서 각 방면에 등장한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하는 세상의 풍조, 이런 문화 사조 중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 중의 하나가 동성애자들의 출현이다. 동시에 이에 편승하는 자들이 불특정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절대다수를 대상으로 도심 한복판에서 시위하는 퀴어 집회라는 이름으로 몇 해 전부터 매년 대도시를 중심한 공식행사를 열고 있다. 여기서 그들이 정당화하는 세 가지 주장을 관심하고자 한다.

첫째, 그들은 스스로를 ‘성 소수자라’고 지칭한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부터 그들에게 그런 용어를 붙였는지 불분명하다. 따라서 이것은 대중성을 확보하려고 그들 스스로가 사용한 기발한 용어전략이라는데 있다.

즉 절대다수에 소외된 약자라는 점을 계속 강조하고 싶은 거다. 가뜩이나 인권침해, 차별받은 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요즘 시대적 정서에 동의를 얻고자 하는 프레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그다음 공격을 위한 교묘한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의외로 그들의 목소리는 작지가 않다.

예컨대 이미 정치권에서 공식적으로 큰 목소리를 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 토론에서 모 후보가 상대편 후보에게 ‘퀴어 집회에 참석할 용의가 있느냐?’라는 느닷없는 질문하는 것을 보았다. 그 질문에 참석에 적극적인 뜻을 답변하지 않자 곧 이어 소수자를 차별하는 식의 발언으로 면박을 주는 발언을 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렇게 답변한 후보에 대해 일부 언론은 다음날 곧바로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후보로 낙인을 찍어 악의적으로 보도를 하였다.

이것은 다수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수없이 말은 하면서 오히려 국민이 판단할 권리를 빼앗는 무력행사나 다름없는 사례에 해당된다. 따라서 성 소수자라는 용어는 도리어 다수를 공격하고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에 지나지 않는 허위 프레임이요 자기모순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소수자, 신체적 약자, 소외된 자, 심지어 죄인들까지 그의 약함과 죄를 주님 앞에 드러내고 고백할 때 주님은 그들과 함께하셨고 고쳐주시고 보호도 받았다는 사실과 애써 일치시키려 하는 것은 반성경적인 것을 끌어들여 성경을 거기에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끼어 맞추려고 하는 성경에 대한 모독이요, 적용의 비약이다.

둘째, 자신들을 혐오한다고 악의적인 선전을 한다. 그러나 성경은 "너는 여자와 동침함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것이니라."(레18:22)고 경고하고 있다. 이때 '가증하다'는 히브리어 '토에바'는 '매우 혐오스럽다'는 뜻이다. 왜 그런가? 이런 행위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정면으로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성적지향, 성적 자기 결정권’이란 또 다른 보조용어 등으로 남, 여 창조하신 성을 거부하다 보니 이제는 급기야 젠더 이데올로기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그들 스스로 혐오 받는다고 공격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고 그들 행사 중 현란하게 노출된 행위가 오히려 한 번도 그런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던 다수에게 혐오스러운 횡포를 가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자신들을 혐오한다고 피해자인 것처럼 억지 주장하는 선동은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역으로 공격하려는 자기방어의 기재에 불과한 자기모순이다.

셋째, 그들은 차별받는다고 선동한다.

자신들이 '성 소수자'라는 용어 선점을 통해 여기에 다수가 소수인 자신들을 차별한다고 선동하기 위해 자극하며 적반하장의 주장을 하고 있다.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란 용어를 언뜻 보면 누구에게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용어개념으로 들린다. 이것이 그 용어전략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자들이 파놓은 함정이다. 그들은 그야말로 다수를 역차별로 몰아가고 있음을 볼 때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성폭력, 성 평등이란 용어가 최근 들어 이토록 빈번하게 사용되었을 때가 있었는가 할 정도로 의아스럽기만 하다. 놀랍게도 성경은 성폭력을 저질렀던 자들이 삿 19장에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에서 일어난 불량배들의 밤새 내 윤간, 즉 폭력사태에서 찾을 수 있다. 삿19:22에서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는 단어가 창19:5의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에서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가 똑같이 동성애를 지칭하는 “야다”이다. 즉 그들 모두가 동성애자들이다.(2.22 감거협 주최 본부교회에서 열린 황선우 교수 강의안 참조) 이후 이스라엘과 그의 동족 베냐민 지파 간에 전쟁이 벌어져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게 되는 그 배경에 불량배라고 한 동성애자들에서 시작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단순히 동성애는 그것 하나만 보고 넘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신학과 주장 속에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가를 밝혀야 하기에 법 전문가의 도움과 신학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이런 조항들이 섞여 들어가 있기에 최근 이 조항을 면면히 검토한 뜻있는 법조인, 신학자 그리고 의료 전문가들까지 나서서 이에 대한 큰 위험성을 학술 토론회를 통해 국민에게 계몽하고 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하겠다.

내가 속한 ‘감리회 거룩성 회복을 위한 비상대책협의회’(감거협) 역시 이 일을 위해 매달 기도회와 세미나를 개최하여 감리교회는 물론 교계에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위에서 지적 한 대로 성 소수자, 혐오, 차별 등의 용어는 그들이 자기방어용 용어전략이요, 스스로의 모순을 담금질한 채 이것을 다수에게 떠밀면서 다수를 선동하고 역차별하려는 모정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의구심을 떨쳐 버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예의주시하며 더 이상 이 세상 풍습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거기에 짜 맞추거나 본받지 말고 잠깐 있다가 지나갈 유행신학에 말려들지 말고 속지 말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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