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인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목사인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 송근종
  • 승인 2021.01.30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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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이승원 감독의 <세자매>가 개봉되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이 영화는 ‘보는 이들이 저마다의 공감과 의미를 얻을 수 있고, 다양한 담론들이 생성될 영화’인 것 같습니다. 특히 세 자매가 모두 주인공이지만 그중에서도 찬양대 지휘자로 나오는 둘째 미연(문소리 역)의 역할이 압도적입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활동 배경이 교회라서 그런지 목사인 저로서는 그를 통하여 더 많은 생각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주인공들은 뒤로하고 집사이자 찬양대 지휘자인 미연을 통해서 들여다보는 신앙의 문제들을 살펴보면, 먼저 미연은 겉으로 보기에는 꽤나 모범적인 신앙인입니다. 주일이 되면 온 가족을 이끌고 예배에 참석하며, 밥을 먹기 전에는 꼭 식사 기도를 하고, 그것도 어린 자녀들에게 기도 훈련을 시킨다는 명목으로 기도하기 전에는 절대로 밥을 먹지 못하도록 합니다.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면서는 목사님과 교인들을 초청하여 감사예배를 드리고 교회에서는 지휘자로서의 직임도 성실히 감당합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신실한 교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그런 미연과 그의 가족들을 칭찬하고 부러워합니다. 미연은 은근히 그런 삶을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조금만 그의 가정을 들여다보면 신앙적으로 문제투성이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식사 기도를 못하는 딸을 다그치는 미연을 통해서 어린 딸은 엄격하고 무서운 하나님만 보게 됩니다.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은 사라지고 기도 시간이 두려워지게 된 것입니다. 배고파 보채는 덩치 좋은 아들에게는 먹을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보다는 있는 것조차도 누리지 못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원망이 늘어나게 됩니다. 남의 눈을 의식하며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아내에게 질린 남편은 결국 불륜이라는 늪에 빠져서 위로받고자 합니다.

물론 가족들을 사랑하고 올바른 신앙의 삶으로 인도해보고자 하는 미연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지나친 율법적인 삶과 더불어 남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적인 행동으로 인해 오히려 가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그러면서 감독은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아버지의 생일파티장으로 몰아갑니다. 교회 장로인 아버지의 생일 파티에 목사님을 모시고 감사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몸과 마음에 큰 상처가 있는 막내아들이 아버지에게 오줌을 싸면서 파티장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존경받아야 할 아버지가 그리고 거룩하고 엄숙하며 축제의 장이 되어야 생일 감사예배가 아들의 배설물로 인해 더렵혀 지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장면만 보아서는 불경하고 불효자로 보이는 자식들을 나무랄 것입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학대당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삶의 무게에 눌려서 살아가는 자식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비로소 그들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됩니다. 아버지 스스로의 진정한 회개와 더불어 피해 당사자인 자식들에게 진정한 사과 없이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오만과 위선은 냄새나는 배설물보다 더 구리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런 내면의 아픔도 모른 채 겉으로 보이는 미연의 모습만 보고서 그를 칭찬하고 부러워하며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가 부끄러웠습니다. 영적이고 내적인 문제는 조금도 알아채지 못하고 치유하지 못하는 영화 속의 목사를 통해서 오늘 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위선 속에서 드려지는 예배와 기도, 오랜 시간을 신앙생활 해도 여전히 변하지 않고 오히려 악행을 정당화해 가는 신앙인의 모습을 통해서 부끄러움은 통한의 눈물이 되어 흘렀습니다.

아, 앞으로 어떻게 목회하고 복음을 전해야 할까요? 고민이 깊어지는 밤입니다.

(필자의 변. 꼭 보고 싶었던 영화라 사람 별로 없을 때 방역 수칙 철저하게 지키면서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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