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목사님, 빠른 권사님
늦은 목사님, 빠른 권사님
  • 신상균
  • 승인 2021.01.28 0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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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가 몰아치던 지난 주, 2층 카페 씽크대 물이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물을 부어도 여전히 물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마침 그날 스마트폰을 배우러 교회에 오신 76세 되신 원로권사님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배수구가 얼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배수구가 언 것이 아니라 씽크대에서 나온 호스가 1층으로 내려가는 배수구에 연결되어 있었는데, 1층 배수구에 연결되는 노출된 부분이 얼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권사님 아니라고 하면서 1층 배수구가 얼어서 물이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권사님은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권사님은 배수구를 보시더니 2층에서 연결된 배수구가 너무 낮게 있어 물이 빠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니라고 2층 연결부위가 얼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사다리를 가지고 와서 2층 배수구 연결부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달라고 하여 그곳에 붓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뜨거운 물을 2층 배수구 연결 부위에 부었을 때 물이 흘러내리는 장면을 상상했습니다.

그러나 씽크대의 물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한번 두 번 세 번씩이나 뜨거운 물을 부었지만 씽크대 물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권사님은 의기양양해 하면서, 거보라고, 배수구 배관이 얼은 것이라고 하면서 내일 해빙기로 녹이고 배관을 약간 높여 놓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2층에서 흘러내리는 배수구 배관이 지면에 너무 딱 붙어 있어서 물이 잘 빠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미안했던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노출부위에 이불로 덮어주시면 얼지 않을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저는 씁쓸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 말이 맞는데’

다음날 권사님은 해빙기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씽크대 하수구의 얼어있는 부분을 녹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아내와 함께 한 성도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연세든 권사님이 일하시는 것이 안타까와 왔다갔다 했더니 저에게 성도님과 이야기하시라고, 본인이 알아서 다 해 놓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한파에 물을 다 녹여도 다시 2층 호스에 물이 차면 얼 것이라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호스가 언 것이 아니라 배수구가 얼었다고 확신하는 권사님은 이제 연세도 있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도 힘들었고, 당연히 2층 노출 부위를 이불로 감싸 놓지 않을 것이 확실했기에, 저는 제 생각대로 노출 부위를 감싸야 절대로 얼지 않는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권사님이 해빙기로 얼음을 녹이는 동안 저는 성도님과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나와보니 이미 권사님은 해빙기로 얼음을 녹이고, 1층 배수구를 잘 정리한 후에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2층에 올라가야 할 사다리까지 창고에 갔다 놓으셨습니다. 2층에 올라갈 사다리를 다시 가져올 생각을 하니 귀찮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꾀가 났습니다.

‘오늘은 2층 까페 안 쓰니까 내일 따뜻할 때 해야지.’

그리고 따뜻한 방안에서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내일 2층에 올라가 마무리 해야지

그 때 아내가 말했습니다. “권사님이 꼭 말하라고 했는데”

“뭘?”하고 묻자 아내가 대답합니다.

“권사님이 2층 배수구 연결부위도 아주 이불로 잘 덮어 놨으니까, 목사님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달라셨어요.”

‘내가 해도 되는데’ 그러면서 사다리를 치운 것에 불편해하던 내 모습이 생각이 났습니다.

권사님이 나보다 빠르셨습니다. 목사는 말로 했는데, 권사님은 몸으로 하셨습니다. 그것도 빨리!

추운 날씨에 얼음을 녹이고, 배수구를 높이고, 그리고 목사가 걱정하던 노출부위도 감싸주던 권사님의 모습을 생각하니 너무 감사하고 미안했습니다.

교회에는 참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항상 다른 사람보다 먼저 움직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해야지 하고 말할 때, 그런 분들은 이미 행동하고 계십니다. 그런 분들이 있기에 교회는 말보다 더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이 됩니다.

권사님의 모습을 보고 나도 더 빨라지려고 합니다. ‘말’ 만하는 목사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목사, 그것도 빨리 행동해서 다른 사람의 걱정을 없애주는 목사. 우리가 그렇게 선한 일을 빨리 행동할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부족함이 없는 아름다운 동산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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