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도 전시효과의 유혹
세월이 가도 전시효과의 유혹
  • 민돈원
  • 승인 2020.12.2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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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학이(學而)편에 나오는 군자 3락(君子 3樂) 중에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것, 멀리 있는 친구가 스스로 찾아오는 것까지는 그 사람의 인격과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그런데 세 번째는 앞의 둘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 준다. 그러기에 내 마음을 후빈다. 즉 人不知而不温 不亦君子乎 (인불지이불온 불역군자호) '상대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열 받지 않음이 또한 어질고 됨됨이가 된 군자 아닌가!’ 이 부분이다.

이렇게 세상과 사람에 연연하지 않고 초연하여 살 수 있는 인품을 지녔다면 성인군자로서의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설사 그렇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렇게 지향하는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의지를 갖고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 이런 가치 있는 인품을 우리의 비밀이신 주님 안에서 감춰진 천국의 보화를 찾는 것처럼 내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발견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런 심성을 가진 삶이야말로 마치 험한 풍랑, 폭풍 속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은 고요함과 같기 때문이다.

지난주 80대 중반의 홀로 사시는 노 권사님 댁을 우리 부부가 몇 주간의 대 심방 기간인지라 찾아갔다. 그 당시 청주의 모 여고를 졸업할 정도였으니 꽤 앞서 있고 깨어있는 집안으로 짐작되었다. 자녀들도 국내, 외에서 좋은 지위를 누리며 살고 있다는 말씀도 들려주셨다. 심방을 갔던 우리 부부는 기도한 것 외에는 줄곧 그 권사님 얘기를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 이유는 그 권사님이 개인과 가족 역사를 한참 들려주시고자 하는 말이 많으셨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녀들 결혼사진을 죄다 꺼내 보여주셨다, 수십 년 전인 70년대 초 한참 잘 나가던 남편 사업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여기에 그 권사님의 교회 내, 외 초기부터 지금까지 활동한 얘기도 곁들였다.

훌륭한 교육을 받으신 분인데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것은 모두 자신이 이것저것 활동한 얘기만 하시고 남편과 자녀들 자랑만 하셨지 정작 심방 간 내 얘기를 듣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실 할 얘기도 없었다. 아마도 이런 낙이라도 가지고 홀로 살아가는 것이 그 권사님 삶의 한 방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이해할 만도 했다. 그러면서 목사인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누군가를 만나면 자칫하다가 내가 남보다 더 높았고 이런 일도 했고 저런 일도 했다면서 도시락 싸 들고 나를 알아달라는 식의 강변을 하면서 과거를 강화코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즉 나를 돋보이고 싶은 유혹이 거의 예외 없이 나이가 들어도 남아 있구나! 라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이에 지금부터라도 내실 있는 목사로 만족하려는 자기 관리가 필요하겠다. 라는 생각이 스쳐 갔다. 이 일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하려고 하면 쉽지가 않음을 안다. 아니 벅차다. 여기저기 간판만 걸어놓고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 하다 보니 부실하게 되고 때로는 과욕으로 인해 적지 않은 부작용도 발생하는 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본다.

사실 자신을 비롯한 우리 주위 사람들을 잘 들여다보면 누군가를 개인적으로든, 단체로든 만났을 때 관심은 상대방으로부터 내가 인정받고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여기에 적잖게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자기 긍정을 통한 하나님 긍정과 하나님 극대화는 당연히 권장할 만하지만 반면에 지나친 자신의 전시효과로 인한 자기과시로 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진정으로 한 가지라도 전문가가 될 만큼 충실하게 사명을 감당하고자 한다면 덧붙여지는 것이 거추장스럽게 여겨지는 내어버림의 훈련과 그 하나만으로도 허전하지 않은 내적 충실함에 주력해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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