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기워 신어도 행복한 목사
양말 기워 신어도 행복한 목사
  • 민돈원
  • 승인 2020.12.01 2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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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 청바지 패션중의 하나는 종아리 쪽이든 무릎이든 심지어 허벅지 부분이든 구멍 뚫린 바지 패션을 흔히 볼 수 있다. 일부러 찢어놓은 것 같아 점잖은 분들이 처음 볼 때는 이해하기 다소 어려운 광경이다.

이같이 구멍 뚫린 패션이 양말 착용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아직 그런 양말은 접해 본 적이 없다.

이에 양말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내 오른쪽 발뒤꿈치 발바닥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 언제부터인가 각질이 있어서인지 오른쪽 뒤꿈치가 딱딱하다. 그러다 보니 새 양말이라도 몇 번 신다 보면 으레 그 부분이 뻥 구멍이 뚫리는 경험을 종종 한다. 어떤 경우는 그런지도 모른 채 심지어 강단에 무릎 꿇고 기도하다가 회중들에게 보이기도 했으리라!

그래도 그런 양말을 버리기가 아까워 손수 바느질하여 꿰매어 신는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다 보면 아무래도 또 같은 곳에 구멍이 뚫어진다. 그러면 다시 꿰매어 신기를 반복하곤 한다.

궁상 맞는다고 할지 모르겠다.

너무 가난해서 새 양말 살 돈이 없어 그런다고 할지 모르겠다.

사실인즉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매주 드리는 감사헌금을 드린 지 20년 가까이 되는 것 같다. 매주 드리는 그 한 번의 감사헌금이면 고급양말 수십 켤레 살 수 있는 액수이다.

평소 나 자신에게는 인색하면서도 주님께는 후한 헌금 드리는 삶이 내 목회철학이다.

아울러 우리 부부의 기쁨이요, 놀라운 축복임을 하나님은 최근 아들이 몇억을 전액 국비로 공부할 수 있게 하심으로 몇십 갑절의 은혜를 누리도록 해 주셨다.

이 일과는 무관하게 이번 주일 어느 권사님이 나에게 신발을 사서 신으라고 꽤 많은 봉투를 주셨다. 아마 몇 주 전 새벽 기도회 시간에 교회 재정을 아낀다는 말씀을 전하면서 내가 단벌 구두로 산다고 하는 그 말이 권사님 마음에 걸려 담아 두신 것 같다. 매주 인천까지 농산물을 가지고 가서 장사하시면서 푼푼이 모아 살면서도 헌신하는 분이다.

그 권사님은 하나님이 강화로 이사 올 때만 해도 먹을 것 하나 제대로 없이 가난했는데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 제1주의로 살면서 기도하며 주님 중심으로 살아왔더니 지금은 하나님이 집도 새집 지어 잘 살게 해 주셨고 풍요롭게 살게 해주셨다고 늘 간증 거리가 많은 분이다. 비록 학문적인 지식은 부족할지라도 온몸으로 주님을 체험한 은혜의 학위, 기도의 학위만큼은 남다른 분이다.

한편 이런 은혜를 무시하는 이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같은 주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교차한다.

ㄱ신대 은퇴한 교수가 쓴 이런 글이 '기독교신문' 10월에 게재한 것을 읽고서 그 원본의 일부를 소개한다.

'...생각하는 신앙이 아니라 기도만 하는 신앙을 가르치는 목회자는 위험하다. 기도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거나, 정직함과 인격적 책임보다 성령과 영성을 강조하며 기복신앙을 가르치는 목회자는 우리의 삶과 신앙을 분리하는 목회자이다.”라고 하면서 나아가 “헌금을 강요하며 헌금자를 예배 시간에 호명하는 목사를 멀리해야 한다. 물신주의에 빠진 목회자이다’

자칫 이런 주장은 기도와 헌금에 대해 지나친 부정적 견해와 왜곡되고 편향적인 측면만을 꼬집어 전체를 싸잡아 비난함으로써 스스로 적어도 학자로서의 품위를 실추시키고 있다. 그가 위험하다고 무책임하게 내 질러대는 이런 따위의 말이 도리어 훨씬 더 위험성의 소지가 크다는 사실을 유포시킨 데 대한 책임이 더 위중하다.

기도 기본도 모르는 넌센스다. 다시 보자.

그가 "생각하는 신앙이 아니라 기도만 하는 신앙을 가르치는 목회자는 위험하다? 기도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거나, 정직함과 인격적 책임보다 성령과 영성을 강조하며 기복신앙을 가르치는 목회자는 우리의 삶과 신앙을 분리하는 목회자이다?”

정말 그런가? 이 말이 어디에 근거한 기도 신학일까? 생각하는 신앙이 아닌 기도만 하는 신앙은 위험하다는 궤변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가 언급한 '생각하는 신앙?'이 도대체 뭔지 애매하다. 굳이 올바른 기도를 말하고자 했다면 '기도만 하는 신앙이 아니라 실천하는 신앙이라야 바람직하다. ' 라고 했어야 그래도 목회현장의 실상을 아는 전직 신학교 교수(목사)다운 제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처한 교회의 현실이 어떤 상황인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할 말만 냅다 내 질러대는 선동적인 주장은 신학교 교수를 지낸 자로서 절제되지 않은 무책임한 처사다.

더욱이 그에 대한 평가는 자신의 신학조차도 동성애를 미화하는 등 주위에서 신뢰받지 못한 분이다. 게다가 특정인이나 교회를 문제 삼아 교회를 비방하는 자극적인 글을 종종 인터넷 매체들에 올려 반 기독교 세력들에게 교회 비방의 그럴싸한 소재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그가 특정 부분을 지목하여 이런 글을 써서 각각의 목회현장이 서로 다른 교회와 목회자를 일방적으로 매도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금년 내내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코로나 시국에도 주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기는커녕 기도와 헌금, 성령 등을 평가절하하고 있는 속에서도 주님의 은혜를 더 확실히 증거할 수 있게 해 주신 주님께 영광 돌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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