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트리가 되자
우리가 트리가 되자
  • KMC뉴스
  • 승인 2020.11.26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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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눈 몇 번 깜빡했더니 성탄절 시즌이 되었습니다. 제가 있는 안산에도 도심 한복판에 예쁜 성탄절 트리가 밝혀졌습니다. 성탄절 트리를 보면서, 한동안 잊고 있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경제가 어렵다 보니 하나둘씩 줄었지만, 얼마 전만 해도 성탄절 시즌이 되면 집집마다 트리를 세우곤 했습니다. 어떤 곳은 크게, 어떤 곳은 작게, 저마다 형편에 맞는 대로 트리를 세운 뒤에, 다양한 색깔의 은하수 전구들을 감아 놓습니다. 노란 전구, 빨간 전구, 파란 전구, 하얀 전구 등 다양한 전구가 켜졌다 꺼졌다 하면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 19로 그럴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냥 올해는 성탄절을 이렇게 지나쳐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성탄절 트리가 되면 됩니다.

성탄절 트리의 유래에는 몇 가지의 설이 있습니다. 그중에 제일 유명한 설은 독일의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의 이야기입니다. 루터가 성탄절 전야에 숲속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루터가 숲을 보다가 깜짝 놀랍니다. 평소에 어둡던 숲이 마치 등불을 켜 놓은 듯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달빛이 소복하게 쌓인 전나무 위에 비쳐서, 밝게 빛나고 있었던 겁니다.

이것은 본 루터는 순간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사람은 어둠 속의 있는 초라한 나무와 같지만, 예수의 빛을 받으면 주변에 아름다운 빛을 비출 수 있는 존재이구나” 그는 자신이 깨달은 것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전나무 하나를 집으로 가져옵니다. 그리고 전나무에 눈 모양의 솜과 촛불과 리본을 장식하는데, 여기서 성탄절 트리가 시작되었다고, 여러 일반 백과사전 등에서는 그렇게 말합니다.

성탄절 트리가 어떻게 시작했든 간에, 성탄절 트리는 1600년대가 되면 독일 전역에 퍼집니다. 그리고 독일에서 영국으로 건너간 하노버 왕조의 영향으로 영국에도 전해지고, 빅토리아 여왕 시대 때 대중화되면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든 간에, 성탄절 트리는 세상에 희망을 전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어둡던 희망에 빛이 오셨음을, 미움이 가득하던 세상에 사랑이 왔음을, 눈물이 많던 세상이 기쁨이 왔음을 전하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트리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빛과 사랑과 기쁨이 전해져서, 그 사람들도 그것들을 전달하는 또 다른 트리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예쁜 트리를 만들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또 하나의 트리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코로나 19로 힘든 때를 보냅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갈등 대신 화해, 미움 대신 사랑, 싸움 대신 용서, 움켜쥐기보다 먼저 베푸는 것입니다. 누가 먼저 그런 일을 해야 할까요?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먼저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올해는 우리가 스스로 트리가 되어봅시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중에 서로 싸우던 독일군과 영국, 프랑스군이 이 날은 서로 악수하고 축하하며 함께 캐럴을 불렀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들은 싸우는 중에도 때때로 함께 축구하며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구가 되는 것! 이것이 성탄절의 행복이 아닐까요? 이를 위해, 나도 누군가에게 성탄절의 트리가 되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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