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모아 태산
티끌 모아 태산
  • KMC뉴스
  • 승인 2020.11.12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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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무슨 일을 하든지 늘 되새기는 정신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무것도 아닌 행동이라도, 의미를 잘 부여하면 충분히 중요한 움직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용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걷기입니다. 걷기! 비록 별거 아닌 행동이지만, 살아있어야 가능한 움직임! 그래서 저는 걷기를 통해서 생명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3년간 많은 분의 참여 속에 <생명사랑 걷기축제>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고민이 생겼습니다. 갑작스럽게 닥친 코로나라는 상황에서, 적은 수라도 모이는 것조차 눈치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우연찮게 연결되었던 한 지인과의 전화 한 통이 저의 생각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눈물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데, 듣고 있던 저는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사업이 완전히 무너졌고, 그러다 보니 삶의 의욕을 잃은 이야기! 게다가 경제적인 문제로 가정에 불화가 생기면서, 가정까지 위기에 빠진 이야기를 들었던 겁니다.

코로나 19가 닥치면서 모일 수 없다 보니 ‘할까 말까’만 고민했던 저는 해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대신 모일 수 없다면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행사를 열었던 지난 1주일간, 저도 앞에 “walking”이란 글씨가 새겨진 파란 티를 입고 시내를, 산책로를 열심히 걸었습니다.

걷던 중에, 당황스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열심히 걷던 저를 붙잡고 이렇게 묻는 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 저렇게 걸은들 세상이 달라질까요? 개미들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세상이 바뀌지는 않잖아요. 우리는 개미가 필요한게 아닙니다. 강력한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이런 소소한 것 말고 더 센 운동으로 세상을 바꿔주세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한 번의 강력한 운동보다 이렇게 별것 아니지만 소소하게 스며드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 중기부터 중국은 여진족이 강해집니다.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우더니 명나라를 점령하고 ‘청’이라는 나라를 세웁니다. 여진족의 시대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중국을 점령한 여진족들은 한족의 위대한 문화를 조금씩 조금씩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중국을 여진족의 세상으로 만들겠다던 그들의 포부는 곧 여진족을 한족 사람이 되게 하면서 사라집니다. 이슬비처럼 조금씩 스며든 한족의 문화가 여진족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한 번에 힘을 발휘하는 총칼보다 조금씩 스며드는 문화의 힘이 더 셉니다. 저는 한꺼번에 많이 걷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곳곳에서 걸었던 이번의 움직임도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교회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총, 칼, 어떤 권력을 업고 복음을 전하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삶으로 예수를 드러내며 복음을 전하는 곳! 교회는 그런 곳이 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권력을 업고 교회가 성장했을 때는 타락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을 드러내는 문화로 사람들에게 스며들 때 교회는 부끄럽지 않은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코로나 시대! 교회가 가야 할 길은 정해졌습니다. 우리의 작은 움직임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새로운 삶을 전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티끌 모아 태산” 티끌 같은 우리의 움직임을 스며들게 해서, 태산 같은 세상을 주님의 나라로 만들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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