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열다섯번째 이야기
큰나무 열다섯번째 이야기
  • 이형연
  • 승인 2020.10.0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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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운영하는 아동센터는 20여년을 맞이하고 있다. 그간 센터를 거쳐 간 아동들은 사회인이 되어 각자의 삶의 자리를 차지했고 아직 대학에 다니는 학생도 있다. 많은 아동 중에 유독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아동이 있다. 아동이 센터를 찾은 것은 초등학교 사학년으로 기억 된다. 고만한 아동들 서넛이 함께 센터에 등록하면서 센터는 조용한 모든 공간을 잃어버렸다. 악동들을 농축하면 이들이 아닐까 싶다. 매일 싸우는 소리 동생들 울리는 소리 컴퓨터 게임 소리 혼이 빠져나간다는 말을 실감했다.

이날은 아주 심각한 싸움이 일어났다. 한 아동이 이 아이의 바지를 뒤에서 벗기는 장난을 쳤는데 헐렁한 고무줄 바지를 입고 있던 이 아동은 바지만 아니라 속옷까지 함께 벗겨지고 말았다. 동생들과 여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민망한 모습을 드러낸 아동은 분노가 폭발하여 집기를 집어 던지는 통에 센터가 난동의 장이 되어 버렸다. 이일만이 아니라 아동을 관찰하면서 다른 아동에 비해 쉽게 분노하고 조절이 되지 않는 아동이었다. 센터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아동은 많은 이들을 근심케 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학교성적은 최하위에 지각하는 날이 지각하지 않는 날보다 많은 유일한 아동이었다. 아동의 소원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컴퓨터 게임만 할 수 있는 세상이 오는 것인데 아직 까지 그가 바라던 세상은 오지 않고 있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2학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 학교에서 돌아온 아동의 얼굴은 벌집이라도 헤집고 돌아온 사람처럼 얼굴이 부어올라 있었다. 또 싸웠나 하고 모르는 척 지나치려다 '너 얼굴이 많이 부었네? 무슨 일 있니!' 라고 관심을 드러내자 아동은 말이 없었다. 평소답지 않게 쳐진 모습의 아동이 걱정 되어 사무실로 오라고 하여 다시 물어보았다. 어렵게 입을 연 아동은 선생님에게 맞았다는 것이다. 아동에게 학교생활은 지겹고 화나고 벗어나고픈 지옥이었다. 아침에 지각하면 지각했다고 맞고 숙제 안했다고 맞고 시험 보면 성적 때문에 맞고 때리는 교사에게 대든다고 맞고 하루도 맞지 않고 지나는 날은 소풍날뿐인 듯 했다. 그날도 아침에 맞고 수업시간에 맞고 대들다 점심시간에 불려가 맞고 오후에 또 맞고--- 였다.
나는 아동학대신고 의무자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아동의 얼굴이 붓도록 맞고 왔다면 신고를 해야 하는 입장이다. 신고로 인하여 사회적 소란이 일기 전에 학교에 전화를 걸어 가해교사를 찾았다. 교감이 달려오고 학생주임 선생님이 달려왔다. 가해 교사도 퇴근 후 나를 찾았다. 이 일은 생각보다 심각해져서 자칫하면 교사와 아동이 크게 다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교감이 학교 안에서 다시는 아동 체벌이 없게 하겠다는 약속과 교사들이 체벌금지 서약을 학생들 앞에서 행하고 학교폭력 금지 캠페인을 하겠다는 약속으로 일을 덮자고 했다.
이들이 돌아가고 아이가 내게 와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했다. 죄송의 의미는 자신으로 인해 벌어진 일 때문이었고, 감사는 그 누군가 자신의 편에 서준 어른은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순간 아동은 아이에서 다른 누구로 성숙해 있었다. 어른으로 아이에게 미안하고 측은함이 밀려 왔다. 미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어느 날 아동이 그림을 끝내고 제출했다. 돌아서는 아동을 불러 세우고 색감이 좋고 표현이 아주 독특하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사실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 그림 이었지만 칭찬을 해주었다. 무언가 동기 부여가 필요한 시기라 아동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림 배우고 싶으면 말해줄래 라고 제안을 했다. 아동은 즉각적으로 배우고 싶어요. 라고 응답했다. 스케치북과 연필, 지우개 그리고 나무로 된 이젤을 준비하여 아동과의 미술교습이 시작 되었다. 가지런히 선을 긋는 것과 공간개념을 이해시키는데 일 년이 걸렸다. 아동은 놀랍게도 포기하지 않았다. 일 년 이후 아동은 학교에서 행하는 각종 미술관련 행사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기초 소묘와 수채화를 가르쳤고 간간히 만화나 그림 기법을 알려 주었다. 아동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동은 대학을 가려면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물어왔다. 공부가 하고 싶어진 것이다. 아동은 이름난 대학은 아니지만 전액 장학생으로 산업디자인과에 합격을 하고 졸업을 했다. 지금은 이름있는 외국계 스포츠 의류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연인도 생겨 열애중이다.

학교 운영위원회의를 마치고 복도로 나왔을 때 학교폭력사건을 기억하는 교사를 마주쳤다. 그는 절을 하다시피 내게 인사를 하고 목사님이 옳았습니다. 라고 인사를 했다. 아동의 성장을 알고 있으며 매보다 사랑과 관심이 진정한 효과를 낸다고 말을 건네왔다.

스승의 날과 어버이날에 나는 아동에게 축하 전화를 받는다. 그에 말에 의하면 내가 그에게는 진정한 스승 이란다 그리고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한 부모란다 과분한 표현이다.

추석에도 안부 전화가 왔다.
인생의 가을에 이 아이도 내게 나름 열매이다.
천만년 세상 시끄러운 이야기를 알고 있는 달이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달빛이 물들어가는 산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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