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반성합니다
기도를 반성합니다
  • 이구영
  • 승인 2020.10.02 0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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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한국 교회는 사회적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유 중에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자성이 없이 자라온 한국교회입니다. 이제 멈추어 서서 하나 둘 내 모습을 돌아볼 때가 되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기도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무조건 열려야 하는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응답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내 소원대로 이루시는 하나님! 매달리면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풍조는 자연스럽게 욕심을 채우는 기복신앙과 물질주의 신앙으로 흘렀고 오늘 세상으로부터 맹폭당하는 이유의 하나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무조건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성경적인 것일까요?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예레미야 33장 3절을 다시 묵상해야 합니다.
“너는 네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
자 여기까지 들으면! 여기까지만 믿으면! 하나님은 도깨비 방망이입니다. 알라딘의 램프입니다.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신랑감 나와라! 신붓감 나와라! 아파트 나와라 뚝딱입니다. 그게 진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뒤의 문장을 놓치시면 안 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메시지 성경은 이 구절을 너무 맘에 들게 번역합니다.
[메세지 성경 렘 33:2-3]
“하나님, 땅을 만들되 생명체가 살기에 알맞고 든든한 곳으로 세운 이, 온 세상에 하나님으로 알려진 이의 메시지다. 나를 불러라, 내가 응답할 것이다. 너 스스로는 결코 깨닫지 못할 경이롭고 놀라운 것들을 너에게 말해줄 것이다.”

기도해서 내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서 내가 생각지도 못하는 하나님의 경이롭고 놀라운 뜻을 알게 될 것임을 강조하는 본문입니다.

얍복강에서 기도하던 야곱의 모습에서 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그날 그곳에서 자기를 괴롭혀 왔던, 자기와 생각이 달라서 갈등 구조 속에 살았던 아버지 이삭, 어머니 리브가, 형에서, 외삼촌 라반, 함께 살던 이종 사촌들과 아내와 자녀들을 위한 기도를 간절하게 드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살기 힘드니 그들을 변화시켜 달라고!!!
그런데 그 긴 기도의 끝에서 야곱은 변화되어야 할 존재는 그들이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 때문에 내가 힘든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과 외삼촌과 이종사촌들이 다 힘들게 살고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아내들 때문에 내가 힘든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아내들과 자녀들이 힘들어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를 바꾸었습니다. 이제 야곱의 인생을 그만 살기로!! 치사하게, 남의 발 뒷굼치를 잡아채며 살던 인생을 포기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경이롭고 놀라운 섭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야곱을 이스라엘로 사용하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보게 되고, 달라진 인생을 향한 힘겨운 출발을 시작하게 됩니다.
에서가 변한 것이 아니라 야곱이 변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뜻대로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경이롭고 놀라운 뜻을 위해서!! 내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날의 기도 이후로 야곱은 이스라엘의 꿈을 꾸며 살게 됩니다.

우리는 또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드리신 기도를 기억합니다. 그토록 간절하게 얍복강의 야곱처럼 그렇게 눈물로 자신의 소원을 다 아뢰신 후에 주님은 이렇게 마무리를 지으셨습니다.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한번이 아닙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의 마지막 밤 내내 이어졌습니다. 포기되지 않는 나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나를 통해서 이루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내가 순복할 수 있도록 나를 다스려주시기를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마 26: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그러고 보면 기도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드리는 것이고, 또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킬 수는 있지만, 그것 보다는 나를 변화시켜 달라고 드리는 것이 정답임을 알게 됩니다. 죄로 물든, 욕심에 물든 내 생각과 내 표정과 내 언어와 내 행동을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림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 기도임을 알게 됩니다. 돈을 사용함에 있어서, 몸을 사용함에 있어서, 혀를 사용함에 있어서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그렇게 기도하고 계신가요?
아파트 당첨을 위해서, 자녀의 합격을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병이 낫기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더 근본적인 기도는 내가 바로 가고 있는 가를 살피는 것이 기도이어야 하고, 그 깊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그 뜻에 맞추어 나를 변화시켜 나가는 여기에 기도의 참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기도를 위해서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고, 남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고, 또 응답이 있을 때 무조건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염된 기독교를 정화시키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사회의 지탄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그 지탄들은 믿지 않는 이들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일 수 있습니다. 이제는 겸허히 꾸지람을 훈계로 받아들이면서 기도를 포함한 내 신앙의 유형을 다시 점검할 때가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기도를 생각합니다.

내 고집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루어드리기 위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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