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열 네번째 이야기
큰나무 열 네번째 이야기
  • 이형연
  • 승인 2020.09.2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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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수확 철이다. 성도들과 지역아동센터 직원들이 총 출동하여 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고 호미와 낫으로 중무장 했다. 나는 옛날 황기를 켈 때 쓰던 삼지창으로 무장하고 밭으로 간다. 장로님이 낫을 이용하여 넝쿨을 걷어내고 비닐 피복을 벗기고 삼지창으로 줄기 부근을 떠내면서 수확의 기대는 최고조에 다다랐다. 웬일인지 파도파도 고구마가 없다. 무성한 줄기만 있고 고구마가 없다. 지난여름 50여일을 쉬지 않고 내린 비가 싹만 키우고 뿌리에 고구마 앉히기를 실패한 것이 분명하다. 열매를 맺지 않아 호된 꾸지람을 들은 무화과나무가 생각난다. 그래도 시작한 일이니 끝을 내야한다. 어른 엄지만한 것이 간혹 보일뿐이다. 매해 같은 장소에 고구마를 심었고 적잖은 재미를 안겨 주어는 대 올 같은 경우는 없었다. 어느 핸가 고구마가 너무 커서 분쇄기로 갈아 녹말을 만든 적은 있어 도 열매를 통 맺지 못한 것이 올해가 처음이다. 기후변화의 여파가 이곳에 까지 다다른 걸 실감한다.

시골의 작은 교회 자리가 나 첫 목회를 시작 했던 해 여름 지나 가을이 다가고 서리가 내릴 무렵 나는 우울하기 짝이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는데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급기야 쌀독의 쌀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교우들에게 이야기 할까를 몇 번 망설이다 연로한 성도들에게 부담을 줄 것 같아 말을 못하고 어머니에게 이야기 할까 했지만 걱정을 끼쳐 들일 것 같아 주저하는 사이 겨울은 점점 코앞으로 닥쳐왔고 쌀이 떨어지고 말았다. 자연스런 금식의 때가 도래한 것이다. 사택의 텃 마루에 앉아 지난밤의 한기를 햇볕으로 몰아내고 있는데 앞집 아주머니가 거대한 함지를 머리에 이고 집밖을 나서고 있었다. 방향은 틀림없이 교회 방향이다. 이윽고 나를 찾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린다. 얼른 일어나 인사를 하고 머리에 이고 있는 함지를 함께 내렸다. 고구마다 한 두 개 도 아니고 함지로 한 가득이다. 금식이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하다. 몇 번이고 감사를 드리고 아주머니가 돌아가지 마자 고구마요리를 시작했다. 구울까 삶을까를 고민하다 굽고 삶고 튀기고 모두 다하기로 하고 제일 큰 놈을 집어 물어 씻어 삶고 적당한 크기를 골라 문밖 화덕에 나무를 모아 불을 지폈다.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얇게 썰은 칲을 튀기면서 입은 생고구마를 우적거리며 먹었다. 내생에 전부를 통 털어 가장 맛있는 식사였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폭만 감으로 한기로 가득한 방안이 행복으로 충만해졌던 잊지 못할 밤을 보냈다.

나는 어려울 때마다 이때를 떠올린다. 쌀독의 쌀이 흰색이 아니 파란 때 열 번이상 씻어야 푸른 물이 나오지 않고 맑아진 쌀로 밥을 지으면 동남아 여행 때 경험한 찰기 없는 밥이 맛있을 때, 승합차에 기름이 없어 차가 고장 났다고 말하며 여러 모임을 취소 하야 했을 때, 방안에 드려놓은 물이 꽁꽁 언 겨울밤을 기억해 낸다. 세상 누구에게도 내가 격고 있는 삶의 불편을 내색하고 살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겐 오늘의 힘든 일들을 감당할 용기로 다가온다. 바울이 가난과 부의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란 말이 현실감 있게 느껴진다..

내게 있어 하나님의 능력은 오늘을 견디는 힘이다. 신비로운 은총도 기적도 없는 목회는 가장 기초적인 섭생과 생활에서 위기가 닥치고 심리적인 위축과 용기를 빼앗아간다. 주님의 능력이 아니면 오늘을 넘기기 어렵다.

주님 외에 어떤 희망도 용납 받지 못한 자의 삶은 고단하고 행복하다.

손가락 굴기의 고구마를 센터 직원이 식당에서 가져와 먹기를 권한다. 그날의 기억으로 울적하다.

짧아진 햇살이 산 위에 붉은 기운을 남기고 박명 되어 어두워 간다,

산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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