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열두 번째 이야기
큰나무 열두 번째 이야기
  • 이형연
  • 승인 2020.08.27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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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에 장이 서는 날이다. 일찍 아침을 챙겨 먹고 마을회관 앞에 차를 정차시키고 서있다. 목사님 장에 가세요. 네 제 차 타고 같이 가세요. 나를 포함한 12명을 타울 수 있는 승합차는 만석이다. 장날이면 살게 없어도 동네 분들을 만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으로 함께 장을 보는 일이다. 강 건너에 있는 버스정류장 까지 걷는 것이 어른들에게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때는 부담의 크기는 더욱 커진다. 수박을 든 노인은 내가 아니면 수박을 살 용기를 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그들과 마주했던 시간은 나름의 친숙을 만들고 장날 뿐 아니라 병원에 모시는 일. 아이들 학교 등굣길을 돕는 일 등으로 바빠지기 시작 했다. 고추를 수확할 때는 수확한 고추를 집으로 나르는 일도 나의 몫이 될 때가 많아 졌다. 어느 날 아이를 둔 부형들이 나를 찾아 왔다. 자녀들을 방과 후에 돌봐주기를 원했다. 보호자 없이 더운 여름 날 강으로 물놀이를 갔다가 참담한 변을 당하는 아이들이 생기면서 일터로 나가야 하는 부모들의 걱정이 커진 것이다. 동네 아이들이 24명이다. 그들을 돌보는 일은 다음 날부터 시작 되었다. 숙제도 도와주고 영어와 그림을 가르치며 시간을 메워 갔다. 말이 수업이지 장난꾸러기 아이들을 나를 졸라 강으로 산으로 나가기를 원했고 여름날이며 어둑해지도록 강가에서 물놀이로 시간을 보냈다.

수확은 한여름 옥수수로부터 시작하여 고추와 들깨 잡곡을 탈곡하는 초겨울 까지 이어진다.

여름 어느 날 교회 건너편 길에서 누군가 크게 나를 부른다. 텅텅거리는 경운기 소리에 도무지 무어라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손짓을 하고 큰 포대자루를 내려놓고 간다. 가까이 가보나 옥수수가 가득하다. 그날 나는 옥수수를 승합차 한 대 분이 넘는 분량을 마을 분들로부터 받았다. 아이들과 노인들을 돌봐준 보상이다. 들깨도 고추도 내가 감당할 수준 이상을 보내 주셨다. 김치와 고추장 된장 간장도 이웃들이 담가 주셨다.

훗날 안 사실은 교회는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누군가 말을 한 것이 화근? 이 되어 마을 분들이 십일조 명분으로 농산물을 주신 것이었다. 이들은 명절에도 나를 초대 했고 집안의 애경사가 있는 날에는 음식을 보내 주었다. 그들과 함께한 정월 대보름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날이다. 찹쌀로 밥을 지어 묵나물과 함께 먹는 날이다. 여러 집에서 나를 초대한다. 이날만큼은 정중히 그들의 초대를 사양한다. 이들의 초대에 응하는 순간 저녁을 몇 번 먹게 될지 알 수 없다. 아이들의 손을 빌어 찰밥과 반찬을 보내주셨다. 일주일 내내 찰밥을 먹어야 했다.

이들의 호의가 부담스럽고 감사해서 올해만 하시고 다음해부터는 그렇게 하시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다음해도 그다음해도 마을은 내게 갚을 수 없는 사랑을 주셨다. 낡은 사택을 헐고 다시 짖을 때는 마을 청년들과 어른들이 오셔서 함께 힘든 일을 도와 주셨고 겨울 난방을 위해 기름을 보내 주시기도 했다. 내게 친절을 베풀어 주신 분들의 대부분은 교인이 아니었다. 불교인도 있었고 무속인도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좋은 이웃이었다.

그들과 함께한 장날 나를 묻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우리 목사님이라고 소개 했다. 그들의 지인들은 교회 다녀 라고 묻어 왔다. 그들은 그저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우리 목사님이 되었다.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내가 들은 최고 찬사이다.

목사의 삶이 교회를 중심하지만 교회 안에서 만 발견 되는 것은 아니다. 목회의 연장선 속에 이웃이 있다. 그들과 함께는 것만으로 이웃은 당신들의 범주 안에 목사를 넣어 준다. 누군가의 이웃으로 평범한 것이 목사라는 삶의 특수성을 가치 있게 한다.

오늘 이웃의 홀로 있는 노인을 위해 사탕 몇 봉을 사서 두어 시간 수다를 떨어주는 배려가 그에게는 우리 목사님을 만든다. 더위가 누그러진 밤하늘에 별들이 가득하다. 산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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