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걸려온 사죄의 전화
7년 만에 걸려온 사죄의 전화
  • 송근종
  • 승인 2020.08.15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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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토요일에 부담임으로 섬기던 D교회의 장로님 한 분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다짜고짜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저희가 그때는 눈이 어두워서 목사님께 몹쓸 짓을 하였습니다. 사죄드립니다.”는 것이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것도 만 7년 만에 처음으로 하시는 말씀이라 무슨 일이 있구나 싶어서 어쩐 일이냐고 되물었습니다.

말씀의 요지는 7년 전에 필자가 만 10년 동안 부담임으로 섬기던 D교회에 사표를 내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조용히 물러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S목사와 그를 추종하는 일부 교인들이 필자를 향하여 퍼부었던 온갖 음해성 말들을 그대로 믿고 자신도 오해하여 필자를 원망하였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7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필자의 뒤를 이어 사역하던 후배 부목사에게 아무런 대책도 없이 사임을 강요하는 S목사와 일부 교인들의 행태가 7년 전 저에게 하였던 것과 똑같음을 보고서 이제야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작 사죄할 당사자는 아니더라도 한때 그를 추종하며 필자를 힘들게 하였던 그의 뒤늦은 회개와 사죄를 통해서 필자는 아벨의 억울한 피의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심을 다시 한 번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필자는 장로님께 7년 전의 전철을 되밟지 마시고, 강제로 사임당하는 부목사에게 힘이 되어 주시라고 당부를 하고는 통화를 마쳤습니다.

아마도 우리 주변에는 이와 비슷한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갈등이 고조되면서 판단력이 흐려지고 시야가 좁혀져 나 중심적이 되어 상대방을 음해하고 문제를 더 심화시켜 나가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감리교회를 뜨겁게 달구는 몇몇 사안들도 그렇습니다.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은 없고, 오직 어느 한쪽이 죽거나 포기하지 않고서는 문제가 해결될 거 같지 않아 보입니다.

더 안타까운 일은 그 결과에 상관없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미 대다수의 감리교회 구성원들이 고통과 피해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감리교회 이미지는 더욱더 나빠지고 코로나 이후에 교회들은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소위 설상가상의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추측컨대 감리교회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다수의 목회자들이 침묵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어려운 시국에 감리교회를 더 큰 어려움에 빠뜨린다고 생각해서이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자가 이미 이런 일련의 갈등 상황들을 경험하면서 얻은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 번째는 서로에게 피할 길(탈출구)을 열어 주면서 갈등의 문제를 해결해 가라는 것입니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진영이 서로의 생각과 뜻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키려고만 하지 말고, 서로에게 피할 길을 열어주면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스스로 고쳐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타의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거나 또는 내가 상대방을 죽이는 인격적인 살인자와 희생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첨예한 갈등의 문제일수록 서로를 살리고 살 수 있는 방법과 여지를 남겨두면서 갈등의 문제에 다가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서로가 이미 답을 정해 놓고 문제에 접근하게 되면 절대로 문제가 풀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는 하나님 말씀대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삶을 진실로 사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더 고통스럽습니다. 화해하지 못하면 함께 사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려면 굳이 애써서 신앙생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차라리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는 것이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말씀대로 살지 않고 외식하는 자가 당하는 형벌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D교회를 사임할 때 온갖 추측성 음해를 당하면서도 한마디 해명도 하지 않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똑같은 경로를 통해서 7년 만에 그 잘못을 바로 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이 의인인양 그리고 심판자가 된 것처럼 행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잘못한 이도 그것이 영원히 숨겨질 것이라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모든 죄를 심판하시고 굽은 것을 바로 세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3) 마지막은 어떤 일이든지 의도를 가지고 다투는 이들과는 함께 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부분 갈등의 당사자나 그것을 확대시키는 사람은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먼저 무릎 꿇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옹호해줄 사람들을 찾아다니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모든 갈등의 문제는 1차적으로 당사자끼리 해결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세워지는 시간을 갖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갈등 해결의 모범인 것입니다.

여기에 제3자가 개입하기 시작하면 문제의 본질이 흐려지기 십상입니다. 대부분 다른 사람이나 교회의 문제에 개입하는 사람들을 보면 일부 정의감에 불타서 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경우가 그 일로 인해서 얻게 될 모종의 사사로운 이익을 숨기고 접근하게 됩니다. 경험상 보면 전자보다는 후자의 사람들이 더 많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결국에는 교회법뿐만 아니라 사회법의 판결을 받고서도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게 됩니다.

물론 사안에 따라서는 함께 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툼이 있는 일에는 가급적 참여하지 않는 것이 본인뿐만 아니라 당사자에게도 유익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줍잖은 판사가 되기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충성된 목회자가 되기를 바라시고, 내가 주의 종과 믿음의 형제들을 쫓아내는 가짜 주인이 되기보다는 더 낮은 자리에서 교회와 성도를 섬기는 진짜 주인이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갈등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교회와 성도들께 목회자로서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목사들이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목사들이 성도들을 잘못 가르쳐서 오늘의 감리교회가 된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하나님께 더 죄송한 마음입니다.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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