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열번째 이야기
큰나무 열번째 이야기
  • 이형연
  • 승인 2020.07.30 11: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 했다.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하기 까지 했다. 개미들은 부산이 알들을 입에 물고 긴 이사 행렬은 만들어 길을 가로지르고 뱀들도 개울 근처에서 나와 마당에서 갈 길을 찾고 있었다. 직감으로 큰비가 올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일고 스산한 기운이 대지에 가득했다. 요란한 천둥소리가 산을 쩌렁쩌렁 울리 면서 거대한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지나도 두 시간이 지나도 비는 멈출 줄 몰랐고 금 새 사방은 어둠 속에 묻혀 버렸다.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만이 빗줄기의 세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첫돌을 지난 아이의 울음소리가 나고 아내는 아이에게 먹일 분유를 준비하고 개수대에서 물을 받으려고 수도꼭지의 손잡이를 돌렸다. 아뿔사 누런 흙탕물이 수도에서 나오면서 우리는 낭패에 빠지고 말았다. 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랜 옛날부터 사용하던 샘을 개량하여 시멘트로 땅속에 큰 수조를 만들고 이를 동네 식수로 사용하는 간이상수도시설이 우리가 쓰던 수도의 형태이다. 평소에는 쓰는데 지장이 없지만 비가 많이 오면 주변의 흙탕물이 유입 되어 삼사일씩 탁 색 된 물이 나왔다. 우리부부가 이를 간과하고 대비하지 못한 것이다.

받아 놓은 물이 아이 한번 분량이 전부였다. 나는 물을 사러 가야한다. 마당에 나온 나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계곡물이 넘쳐 큰 개울을 만들어 길을 타고 내려 달리고 있었다. 마당 끝은 이미 패여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렁이 되었고 걸어서 물을 구하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어야 가게가 있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고 강물의 사정도 알 길이 없어 주변사람들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었다. 교우들에게 전화를 했다. 강물이 이미 넘쳐 도로로 들어와서 차량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차량을 움직일 수 있다 해도 워낙 빗줄기가 강해서 앞을 분간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차량으로 한 시간 가까이 떨어져 목회하는 친구가 나를 걱정하여 전화를 했다. 우리의 긴급한 사정을 알렸지만 친구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아내는 흙탕물이라도 가라앉혀서 쓸 요량으로 큰 함지에 물을 받았다. 흙물은 탁 도는 줄었지만 젖먹이 아이에게 먹일 수는 없었다. 한참을 지난 후에 빗줄기 속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섞여 있는 듯 하여 문을 열었는데 놀랍게도 한 시간 거리의 그 친구가 양손에 큰 물병 박스를 들고 노란 우의를 입은 채 서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어떻게 빗길을 헤치고 왔는지를 묻지 못했다. 물병을 내려놓은 친구는 잘있으라는 말만 남기고 바로 뒤돌아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안전하기를 기도하고 기도하며 한 시간이 지난 뒤 친구 집에 전화를 했지만 전화가 불통 되었고 이내 전기도 나가 버렸다.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세상이 분간 되면서 마당과 밭들은 온통 물바다였다. 교회 앞길은 사람 키를 넘게 패여 나가서 길의 형태가 없어 졌고 강물은 넘쳐서 동내로 들어오는 길이 어디인지를 알 수 없을 만큼 차올라 두려운 소리를 내며 흘러갔다. 교우들이 걱정 됐지만 전화가 되지 않아 알 길이 없었다. 마을이 고립에서 풀린 것은 그날 오후 늦게였다. 하지만 차량은 토사가 밀려와 거리를 덮은 관계로 다음날에서야 겨우 다닐 수 있었다. 교회 앞길은 다음날 중장비와 덤프 트럭이 종일토록 흙을 날라 메우고서야 우리를 고립에서 해방 시켰다.

전화가 개통 되면서 고마운 친구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했다. 다행이 그는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한다. 후에 들은 이야기는 그가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평창강을 끼고 이어지는 한 시간 가량의 도로는 낙석과 침수 그리고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빗줄기 로 친구를 긴장시켰다. 길과 강이 구별 되지 않아 온 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집에 도착한 그는 거의 탈진 상태였고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신 주님께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늘 그 친구가 그립다. 갚기 힘든 사랑의 빚을 졌다. 친구의 사랑으로 홍수의 위기를 넘긴 그 아이는 대학을 진학하여 한 학기를 남기고 졸업을 기다리고 있다.

밖에 빗소리가 들린다. 그날의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리움과 함께 밤은 깊어만 간다. 산이실에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