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여덟번째 이야기
큰나무 여덟번째 이야기
  • 이형연
  • 승인 2020.07.02 0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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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고 건조했던 유월이 가버렸다. 한국전쟁의 참화 속을 결었던 세대도 하나둘 우리들의 곁을 비우고 오늘처럼 대내였던 많은 이야기도 그들과 함께 사라져가고 있다.

그도 전쟁을 몸으로 격어 낸 분이셨다. 20이 채 안된 나이에 전쟁이 발생 했고 징집명령과 함께 군대에 입대하여 제대로 된 훈련도 못 받고 전투에 참여 했다. 숱한 죽음이 그의 주변을 감싸고돌았고 그도 예외 없이 고비가 찾아 왔다. 폭탄이 터졌고 몸이 공중으로 떠오른 기억 외에 상황을 알지 못했다. 온몸에 파편이 박혔고 귀도 눈도 기능이 되지 않았다. 시력과 청력을 회복하는 데는 수개월이 걸렸다. 무공훈장 비슷한 것을 받았다는데 기억이 가물 했다. 자신의 계급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제대를 했다.

그에게 군대의 기억은 두려움과 기장으로 가득 찬 죽음의 현장뿐이었다.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는 어제 일처럼 전투현장을 설명했고 그 또한 현장에 있는 사람처럼 눈물과 떨림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글도 읽을 줄 모르고 숫자에 대한 개념도 거의 희박하다. 천원과 만원을 구분하지 못했고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는 개념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이해한 최고의 오락은 고스톱이란 화투 놀이인데 돈을 딴 적은 아마 없는 것 같다. 그는 평생 담배를 즐겼는데 한 갑의 담배면 천하를 가진 자처럼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는 일 년에 몇 번 교회에 오는 것으로 어엿이 교회의 성도로 불림 받았고 그 교회 담임 목사인 나는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그를 심방하여 그 생생한 전투현장에 서야 했다. 그의 집에서 속회 예배가 있는 날은 전투이야기와 함께 그분의 헌신을 경험하게 되는데 자신이 가진 모든 현찰을 헌금하신다. 물론 이 만원은 담배 값으로 미리 빼놓고 말이다. 이만원을 빼놓는 것을 깜박하는 날에는 다시 환불을 요구하신다.

그는 이 정황에서도 육남매를 거뜬히 키워 내셨고 그들은 소문난 효자들이다. 그의 노년을 편히 지내게 하기 위해 이들은 집을 새로 지어 드렸고 교회는 그의 훈장과 참전의 기록을 찾기 위하여 보훈처에 요청서를 보냈고 여러 과정을 거쳐 참전용사와 훈장수여자가 되어 연금혜택을 받게 되었다.

그에게 찾아든 노년의 행운은 얼마가지 않았다. 치매증세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채 일 년이 지나기도 전에 친구들을 몰라보게 되었고 그해 가족들도 알아보지 못했다. 가족들은 신중한 판단으로 국가에서 운영하는 노인시설에 보호를 요청하여 입소가 결정 되었다.

그를 걱정한 권사님이신 그의 아내는 거의 매일 같이 요양시설로 남편을 면회 갖지만 그의 반응은 아주머니는 누구신데 자꾸 찾아오느냐며 박대만 받고 돌아 서야 했다.

교우들과 음식을 장만하여 그를 면회 같다. 우리들을 알아보지 못할 것을 미리 예견한 방문이었다. 그가 쓰고 있는 방을 안내 받아 방안으로 들어서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 졌다. 침상에서 벌떡 일어서서 목사님 오셨어요. 그가 담임 목사인 나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의 아내에게는 ‘아주머니는 또 오셨네’ 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함께한 성도들에게는 누구신데 이렇게 자기를 찾아 왔냐고 하셨다.

그의 아내가 ‘목사님은 어떻게 알아보세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의 대답은 ‘목사님을 내가 왜 못 알아봐’ 도리어 질문하는 사람이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 이었다.

권사님이 후에 일러준 사실은 그가 목사인 나를 아주 좋아 했다고 한다. 이유는 단한가지다. 자신의 전투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은 목사 밖에 없었다.

이 땅에 아직 살아 계신 그분과 같은 아픔의 이야기를 교회와 국가는 귀담아 들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그분들에게 마땅한 보답이다. 밤사이 비가 내렸고 심어 놓은 콩에 싹이 텄다. 닭이라도 한 마리 사서 그의 추도 일에 권사님 댁을 방문할 예정이다. 산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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