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일곱번째 이야기
큰나무 일곱번째 이야기
  • 이형연
  • 승인 2020.06.18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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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남선교회 주관으로 교회와 나란히 위치한 밭에 참깨를 심었다. 트랙터를 갖고 있는 성도가 로타리를 치고 밭고랑을 만들고 남선교회원들은 비닐을 씨우고 참깨모종을 심었다. 지난해도 이 밭에 참깨를 심어 의미 있는 수확을 경험한 터라 이른 더위가 심술을 부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두가 땀을 흘렸고 아침부터 시작한 일은 오후가 절반을 넘길 쯤에야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지난해 난생 처음으로 참깨 농사에 도전장을 냈다. 물론 농사의 달인들인 성도들을 믿고 저지른 목사의 오만무도한 도전이다. 올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과정을 거쳐 심은 참깨는 놀라운 성장을 거듭했다. 성도들 몇은 기도와 찬송을 듣고 자라 참깨가 저렇게 실하게 자라고 있다고 찬사를 보내 왔고 참깨농사 절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철없는 목사는 거두어들일 수확량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그날 아주 충격적인 그날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평안한 아침으로 시작 했다. 덥고 습한 여름이 한 날의 마감하는 저녁 무렵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왔고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모처럼 찾아온 덥지 않은 저녁 이었다. 바람은 점점 세기를 달리하며 강해지더니 하늘은 먹구름으로 덮여 버렸다. 지나가는 소나기려니 했는데 돌풍이 불고 천둥번개를 동반한 강한 비가 밤새도록 내렸다. 아침이 밝아 오면서 자랑스런 참깨 밭은 처참 그 자체였다. 단 한포기의 참깨도 서있지 않고 모두 누워 버려다. 무심한 여름해가 떠올랐고 침통한 표정으로 드러누워 버린 참깨를 일으켜 세우려 포기를 들어 올리는 순간 툭 참깨는 부러져 버렸다. 다시 시도한 다른 포기도 또 다른 포기도 부러져 버린 것이다. 일으켜 세우는 것조차 용납 되지 않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사태는 수습 불가가 되어 버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운 참깨포기 사이로 풀들이 자라 올라오기 시작 했다. 혹시나 해서 포기 사이 풀들을 뽑아 주었지만 수확을 기대하진 않았다. 성도들 누구도 참깨를 거론하지 않았다.

참깨 수확시기가 되어 쓰러진 참깨를 낫으로 베고 단으로 묶어 세웠다. 참깨 단이 검게 말라갈 무렵 장로님이 회초리질을 단에 가하기 시작 했다. 하얀 참깨 알이 떨어지기 시작 했다. 한말 두말 세말 기대 이상의 수확에 모두를 놀라게 했다. 수확된 참깨는 여러 봉지로 나누어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의 목회는 넘어진 자를 억지로라도 일으켜 세우려는 방식을 오랫동안 고집스럽게 시도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나는 넘어진 자를 굳이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도리어 넘어진 상태에서도 의미를 찾도록 돕는데 주력한다. 사업에 실패하여 다시 재기하여 성공한 예가 많지만 회복불가능에 빠져 일어서지 못하는 자는 성공한 자와 비교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 병을 극복하여 건강을 회복한 자들의 이야기는 너무도 자주 듣는 간증의 단골 메뉴지만 지병으로 삶을 다한 자들은 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의지가 부족하거나 믿음의 수치가 낮아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실패의 자리에 넘어진 많은 사람들을 믿음의 천재로 변화시킬 재주가 내겐 없다. 다 바울 같고 베드로 같아지길 기도하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도리어 절망으로 엉망이 되어 있는 가정을 방문하여 함께 울고 돌아서며 납덩이같은 발길로 말없이 돌아 올 때가 거의 대부분이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삶이 거기가 끝이 아니란 것이다. 다시 추스리고 일어나 삶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울던 얼굴에 다시 미소를 발견하게 되고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눈빛이 다시 평안해지고 어제가 아닌 내일을 향해 걸움을 움직여 간다는 것이다.

올해 심은 참깨가 다시 모두 넘어져도 지난해처럼 침통하거나 놀라지 않을 작정이다. 단지 지금 불어오는 바람을 감사하며 즐기려한다. 멀리 고라니 울음소리가 들리고 풀잎은 이슬을 머금었다 방울을 만들어 땅에 떨군다. 산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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