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도 낙타도
하루살이도 낙타도
  • 이구영
  • 승인 2020.06.12 0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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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당시에, 예수님께 꾸지람을 많이 듣던 사람들 중에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 주일성수라거나 십일조 생활은 하면서 이웃 사랑이 식어져버린 사람들!
- 하나님이나 교회나 교인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
- 양복 입고 또는 깨끗하게 옷을 입고 화장도 폼 나게 하고 외모는 잘 꾸미면서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탐욕과 방탕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 법을 잘 알기에 벌을 피해가는 법도 알아서 이 구실 저 구실을 대면서 벌을 피해가며 죄를 반복하는 사람들!

이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이런 꾸지람을 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마 23: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여기서 하루살이로 번역된 희랍어 원어는 모기, 각다귀 같이 팔레스틴 지방에서 발효해 만든 포도주에서 서식하는 모기류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러한 곤충들은 사람에게 해로울 뿐 아니라 율법에서도 부정하기에 먹어서는 안 되는 동물로 규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또 낙타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위기 11장 4절에 보면 먹어도 되는 동물은 새김질도 하고 굽도 갈라져 있는 소나 양이고, 낙타는 새김질은 하는데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먹지 못하는 짐승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배운 그대로 포도주위에 떠 있는 아주 작은 날 파리, 그 하루살이도 먹지 않았고 그 큰 낙타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도다’
낙타도 안 되고 하루살이도 안 되는데, 자꾸만 사람들은 선택을 하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혹은 남들도 다 하는데 뭐,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하시는 대도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먹고 싶은 것입니다. 내가 지을 수 있는 죄를 선택해서 합리화 하고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그 죄와 벗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오늘날에는 우리들 중에는 없을까요? 난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큰 죄는 짓지 않지만 작은 죄를 짓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반대로 큰 죄를 지으면서 사소한 생활 속의 죄는 안 짓는다면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직장생활은 잘 하는데 가정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의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가정생활은 잘 하는데 직장생활이 엉망이라면 의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운전자로서는 좋은데 보행자로서 안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부모노릇은 잘 하는데 자녀노릇은 못하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권리에 대하여는 잘 알면서 의무는 소홀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둘 다 잘하기는 쉽지 않지만 어느 것도 작게 여겨서는 안 됨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와는 관계가 좋은데 남편과는 안 좋다면, 죄인입니다. 친정과는 관계가 좋은데 시댁과는 안 좋다면 역시 죄인입니다.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성령님의 도우심속에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고 현실 속에서 이루어야 될 우리들의 모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작은 죄이건, 큰 죄이건, 합리화되는 죄 이건, 명백히 구분되는 죄이건 그 어떤 것도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것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죄가 죄가 아닌 것처럼 둔갑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루살이도 먹어서는 안 되고, 낙타도 안 됩니다. 죄는 그 모양이라도 버리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하루살이도 낙타도 다 먹지 않고 거절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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