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여섯 번째 이야기
큰나무 여섯 번째 이야기
  • 이형연
  • 승인 2020.06.03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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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의 풀은 자라 어른 키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길이라고 하기 엔 사람이 지난 흔적만 있고 방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강가를 메워 버렸고 풀숲 가운데는 늪이 형성 되어 발목까지 뻘이 되어 빠져 들었다. 어둠은 이미 땅바닥 까지 내려와 겨운 후레쉬 불에 의지하여 탐험을 하듯 강물이 모이는 곳을 향해 힘겨운 진행을 해야만 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떠나는 밤낚시다. 그것도 선배의 방문에 갑자기 계획되어 낚시 가방과 의자만 챙겨 집 앞 강가로 나가는 여정인데 모레와 자갈밭으로 넓게 펼쳐져 있던 강가는 몇 해 이러다할 홍수가 없자 풀이 자리기 시작하고 강 버들나무가 자리면서 온통 열대 밀림을 방불케 하는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우선 강을 건너 낚시 포인트로 이동해야한다. 강물이 깊지 않은 여울 바로 위를 건너는 것이 요령이다. 쉽게 생각한 도강은 바닥에 낀 물 때로 인해 여간 미끄럽지가 않다. 물은 무릎을 넘고 몇 번을 휘청거리며 몸에 중심을 잡아야 했다. 다음은 미끼를 준비해야 한다. 동네 가게에서 파는 지렁이를 사가지고 오면 간단한 것을 굳이 강 물속 돌을 들춰 물벌레를 미끼로 쓰자고 한 것이 화근이 되어 삼십 여분을 소비하여 겨우 십여 마리의 잠자리 유충을 잡아 낚시할 장소에 앉았다.

구름 속을 들락거리는 달빛은 건너편 절벽을 희미하게 비추고 하얀 포말을 이루며 소리 내어 흐르는 강물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함께한 선배에게 ‘참 잘 왔다’고 말을 건네며 살포시 불어오는 강바람의 부드러움에 취할 쯤 강 하류에서 불은 불빛이 번쩍이며 서서히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강에 모터달린 작은 보트를 띠우고 어로작업을 하는 어선이다. 낚싯대 가까이 까지 접근하여 ‘죄송합니다’라는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내 그물을 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하류로 다시 내려가는데 물속을 흘고 지나는 그물소리가 강 밖에서도 들려온다. 분위기에 흠뻑 젖어있던 나는 저거 불법 조업 아니야 하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어선이 멀어질 쯤 다시 낚시에 집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모터소리가 들린다. 다시 그 어선이 등장한 것이다. 이번에도 여전히 가까이까지와 그물을 내려 아까와 같은 일을 반복할 모양이다. 붉은 불빛이 새나오는 배안은 남자 혼자가 아니다. 그의 아내인 듯 한 여자의 목소리도 섞여 있다. 한 밤에 젊은 부부가 삶을 이어가기 위해 작은 배에 의지한 것이 분명하다. 사내의 아내는 남편을 도와 끌어 올린 다슬기를 분류하는 일을 하는 듯했다. 차가운 강바람을 피하기 위해 눈만 내고 천을 두른 얼굴이 보일 듯 말듯하고 바쁜 손의 움직임이 그녀의 존재의 이유를 말하고 있다.

집에 두고 온 아이가 있으려나 저녁은 먹고 일은하는가. 한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강에 두려움 없이 남편을 따라나선 용기는 어디서 온 것일까. 그들의 삶을 이해 못하는 강변의 낚시꾼들의 항의와 욕설이 빈번할 텐데 부부는 그것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하다.

분명 젊은 사람이 시골에 내려와 힘든 일을 할 때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다행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젊은 부부의 용기와 그들을 하나로 묶고 있는 사랑이다.

사랑은 품격 있고 편한 자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거친 노동의 현장에도 가난한 오두막에도 자리한다. 사랑이 머무는 곳은 행복이 함께하고 거친 세상을 감당할 용기도 함께한다.

자정이 되도록 그들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낚시는 말 그대로 물 건너 가버렸다. 젊은 부부의 일상에 배인 사랑을 감상하며 달빛에 흠뻑 취하는 것이면 오늘은 대어를 낚은 날 보다 행복하다.

강여울 소리가 좋은 음악소리처럼 아름답게 들리고 삶을 낚는 젊은 부부의 배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달님과 나만 남은 강가는 달콤하게 깊어만 간다. 산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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