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친구 영원한 친구
진정한 친구 영원한 친구
  • KMC뉴스
  • 승인 2020.06.0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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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세 번째가 내 모습
왼쪽에서 세 번째가 내 모습

“구관이 명관이다.”(舊官名官)는 말이 있다. 대체로 두 가지 뜻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나는 어떤 일에 경험이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낫다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나중에 사람을 겪어 보니 지금 사람보다 이전 사람이 더 좋은 줄을 알게 된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친구(親舊)란 옛 부터 오래도록 친하게 지내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가 하면 살아가면서 어느 땐가는 서로 만나 사귄지 얼마 안 되었어도 도리어 오래 사귀어 온 것 이상으로 가까이 지내는 친구, 또는 친구나 다름없는 그런 막역한 사이도 있다.

흔히 친구라 함은 함께 같은 고향에서 자라온 동네친구, 같은 학교 다니면서 사귄 학교친구, 교회나 직장에서 마음이 맞아 사귀게 되는 교회친구, 직장친구, 그 외에도 어떤 이슈나 의식을 같이하여 맺어진 동지의식을 가진 친구들과 같이 다양한 관계로 맺어질 수 있다.

내게도 이런저런 친구가운데 학교친구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나와 한 시대를 같은 대학캠퍼스에서 공부하며 만났던 이른바 ‘1897’이란 모임의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있다.(사진)

이 이름은 내가 다니던 학교가 지금으로부터 123년 전인 1897년 미국의 윌리엄 베어드(W. M. Baird,裵緯良)선교사님에 의해 평양에서 시작되었기에 그 창립일 숫자 그대로 우리 모임을 정했다. 10여명의 나이가 같은 친구들의 모임이다. 각각 전공과목이 다르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예컨대 철학과를 비롯 영문학과, 경영학과, 법학과, 전자공학과 기계공학과 화학공학과, 섬유공학과, 물리학과 등 다양한 학과 출신들로 졸업 이후 33년이 지나 서로 자주 만날 수는 없지만 일부는 지금까지 계속 전화내지는 페북, 카톡 등으로 연락하고 직접 만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절반은 우리나라에서 살지만 또 절반은 미국, 호주, 필리핀, 일본 등에서 흩어져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에는 서울에 살고 있는 그 두 친구들의 방문을 받았다. 그 한 친구의 반가운 사연 때문이다. 그 두 친구가운데 전자공학과 출신이고 같은 기숙사에서 지냈던 친구가 금년 1월 나를 찾아왔었다. 그 당시 찾아 온 이유는 기독교 건학 이념으로 세워진 호서대학에서 산학협동 교수, 즉 기업체에서 연구, 고위직 경력 가진 자를 채용한다고 해서 지원을 하려고 하는데 교회 추천서가 필요하다고 해서 부탁하러 왔다는 것이다.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눈 가운데 추천서를 써주고 기도해 주었다. 그 친구는 KT본부장을 지낸 고위간부 출신의 경력을 보유하였다.

그런 후 1달 쯤 지나 나에게 소식이 왔다. 교수로 채용되었다고 전화로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꼭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전염병 사태가 전국에 퍼져 외출이 통제되었다. 하지만 가까운 시일 안에 찾아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차일피일 하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여겨 찾아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금년 1월 임원 헌신예배 때 초청해서 임원들의 대인관계 자질 향상을 위해 이 방면의 명강사요 공감 능력박사로 좋은 강의를 해 준 다른 친구와 동행하여 오후부터 저녁시간까지 오랜만의 우정을 나누었다.

사실 이 친구가 찾아온 것은 분명한 사연이 있었다. 한마디 우스갯소리로 표현하자면 나에게 빚 갚으러 왔던 것이다. 추천서 써줄 때 그 때 당시 친한 친구니까 이런 말을 건넸다. ‘자네에게 추천서 써주기는 할 텐데 대신 교수 임용되면 내가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합격시켜 주신 줄 알고 하나님 앞에 첫 열매(월급)는 다 드리소?’ 대답이 그렇게 시원치는 않았으나 그리해 보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그런지 4개월 만에 감사의 마음과 함께 마음에 걸려 부담을 덜려고 왔던 것이다. 식사비는 그가 지불하고 바다 바람 쐬면서 이후 카페에서 차는 내가 대접했다. 그리고 우리 셋이서 어둠이 깔리기까지 오붓한 시간을 갖고 집으로 떠나기 전 내게 봉투 하나를 내 밀었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예물이었다. 처음에 내가 제시한 정도에는 못 미쳤지만 그래도 그 친구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두툼한 봉투를 그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감사헌금을 드리면서 교우들에게도 흐뭇한 미담이기에 소개했다.

한편 이번주간에는 내 아들 친구들 4명이 청평에서 친구를 보고 싶다고 찾아왔다. 청평중학교로 3학년 1학기 때 전학 갔으니 겨우 1년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그런데도 2시간 가까이 되는 거리를 친구이기에 강화까지 찾아온 아들 친구들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런 그들에 대해 아들이 하는 말 ‘시골에 사는 애들이 더 뭉쳐있고 의리가 있더라...’

사람에 따라 개인차는 있겠지만 그래도 서로 신의를 지키고, 의리가 있어서 언제든지 찾아가고 찾아와 만나고 싶은 사람, 이들이야말로 꼭 학교친구만이 아니라 어떤 계기와 모임으로 만난 사람일지라도 앞에서 언급한 나와 나의 아들의 경우와 같은 그런 사람이라면 진정한 친구요 영원한 친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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