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네 번째 이야기
큰나무 네 번째 이야기
  • 이형연
  • 승인 2020.05.06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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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은 팔과 허리가 뻐근하다. 권사님이 내준 텃밭을 일구느라 종일 햇볕 아래 있었다.

농사일을 처음 경험한 것은 첫 목회지에서 동네 분들의 고추를 따주거나 옥수수 수확을 돕는 일이었다. 내손으로 식물을 심고 가꾸는 것은 지금 교회에 부임하면서 농사철 온 동네가 바쁜데 나만 집에서 있기가 좀 그래서, 교회 앞 남의 당 300여평을 빌어 옥수수를 심는 것으로 시작 했다. 마사토를 객토하고 처음 심는 땅이라 모두들 농사가 되지 않으니 만류했는데 고집을 부려 밭고랑을 만들고 옥수수 씨앗을 심었다. 고랑은 성도님들의 도움으로 기계작업이 됐지만 남은 일들은 몸을 움직여야만 가능한 일인데 몇 고랑 씨앗을 심는 일조차 내겐 힘들고 버겁게 느껴졌다. 나름 풀도 뽑아주고 비료도 줬는데 옥수수는 싹만 틔우고 자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같은 날 심은 이웃집 옥수수는 무릎을 지나 허리에 이르도록 내 심은 옥수수는 채 한 뼘을 넘지 못하고 성장을 멈춘 듯 했다. 비상수단으로 비싼 영양제를 사다 뿌려 주고 호스로 물을 대주고 갖은 수단을 대해도 변화가 없었다. 교우들이 포기하시고 갈아엎고 다른 것을 심으라고 권유했지만 그간들인 정성이 아까워 며칠이라도 기다려 보기로 했다. 장마가 시작 되면서 드디어 나의 사랑하는 옥수수에도 변화가 시작 되었다. 잠자고 나면 보일정도로 성장하더니 옆집 옥수수 크기에 다가셨다. 지나는 농부들이 빨리 자란 작물은 알이 들지 않는다고 하나둘 훈수를 두기 시작하면서 나는 첫 농사의 실패를 직감 했다. 옥수수수염이 마르고 수확 시기가 되어 떨리는 손으로 껍질을 벗기는 순간 ‘하나님 감사합니다’ 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토실하고 꽉 찬 미백 옥수수의 자태가 눈에 들어 왔다.

가까운 부대 교회에 설교하러가는 날 병사들에게 주려고 옥수수를 수확해 솥에 삶기로 했다.

마당 곁에 걸어 놓은 대형 가마솥에 옥수수를 삶는데 날은 덥고 연기에, 솥의 열기에, 양복차림의 나는 금 새 물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온몸이 땀에 젖고 말았다. 하지만 행복의 크기와 성공한 자의 자부심이 옷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설교를 마치고 가져간 옥수수를 나누면서 나는 속으로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지금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고 있는 거야’

그 이후로 나는 나의 작은 농사에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우선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성도들의 삶 속으로 한발 더 들어갔다는 것, 그들의 고단한 일상과 걱정, 그리고 애타는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소한 나의 설교가 허공을 치지 않고 그들의 삶에 좀 더 가까이 다가 설수 있다고 생각 했다.

20여년 나는 거반 농부의 경지 다다라 있다. 농사가 삶에 일부분이 되었고 새벽에 밭에 나가 식물을 돌보고 마을의 농부들과 농사일로 말을 주고받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세상의 여타의 많은 직업 중에 농부만큼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선 지업은 없는 듯하다. 농부는 자신의 삶이 농사와 하나가 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직업이다. 하여 정해진 일하는 시간도 이로 인한 대가도 농부의 계산에는 없다. 그들의 수고로 사람이든 짐승이든 들의 곤충과 생명들이 함께 생을 이어 간다. 생명의 신비와 섭생의 원천을 삶으로 이해하고 순응하고 살아가는 것이 농부 된 자들의 삶이다.

요한복음15장의 “하나님은 농부시니” 하나님의 직업도 농부시다. 생명으로 생명을 낳고 이어 가게하시는 신비의 영역을 다루는 것이 하나님의 직업이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신비의 산물을 입에 넣어야만 생명이 유지 되고 오늘에서 내일로 갈수 있는 힘을 공급 받을 수 있다. 내게 있어 하나님의 말씀과 빵은 다르지 않은 하나이다. 이 둘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오고 인간의 수고와 헌신으로 인해 성취 된다.

나의 하는 일이 삶이고 삶이 나일 때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 같은 직업의 사람이 된다.

기적을 땅에 심고 사랑을 거두는 날을 소망하며....... 산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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