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맹꽁이야!
당신은 맹꽁이야!
  • 민돈원
  • 승인 2020.05.05 09: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달 말에 동문이신 대선배 목사님의 초청으로 또 다른 몇몇 선배 목사님들과 함께 뜻 깊은 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있었다. 서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은퇴 이후 노년에 관한 화두로 옮겨졌다. 함께 자리한 선배님들 대부분이 은퇴하신 분들이었는데 대화를 하는 가운데 바로 은퇴이후 생활비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게 되었다. 그 가운데 어느 선배 목사님 내외분은 모두 교직에 계시다 은퇴한 이후 두 분이 교직 연금으로 수령하는 액수가 한 분이 현직에 있을 때보다 받는 것보다 훨씬 상회하는 고액 연금을 매달 수령하고 있다는 이야기, 또 어느 은퇴 하신 분은 사모님이 규모있는 요양원 원장으로 있어서 받는 월급과 함께 역시 목사님이 퇴직이후 받는 이런 저런 수령액을 합치니 꽤 넉넉한 생활비로 살아가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듣고보니 나에게는 여전히 그런 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그 이유는 현실적으로 내 경우는 그런 고액의 액수를 매달 수령할 수 있는 보장이 되어 있지도 않음은 물론, 현재 제도권 목회에서 보장하는 그리 길지 않은 남은 기간에 은퇴 후 교회가 놀라운 은혜로 제공하는 주택이 아니라면 노후 생활 보장을 준비한다고 해도 도시 아파트는 고사하고 시골집 하나도 마련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단 하나 생뚱맞은 방법을 가정해 본다면 교회에서 받는 사례비에서 우리 가족이 지금까지 매주 적지않게 하나님께 드려오던 헌금의 액수, 예컨대 십일조만 드리고 기타 모든 헌금은 최소로 줄이는 것인데 어쩌면 인간적으로 계산할 때 은퇴할 쯤 나름대로 먹고 살 수 있는 저축은 할 수 있을 법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은 다운사이징할지라도 나의 공급자이신 하나님께 드려지는 헌금을 장래가 불안하다고 줄이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지난 26년간 목회하면서 내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을만큼 나 자신을 위해 저축을 해 본 경험이 없다. 그렇다고 저축할 돈이 없어서라기보다 그 달 안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묵묵히 따르는 아내와 함께 불평없이 전적으로 드리는 일을 기쁨으로 여기며 살아왔던 지난날의 삶이었던 것을 지금까지 후회해 본적이 없다. 나는 하늘나라의 소비자로 산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나의 사정을 아시고 가깝게 지내는 모 대학 총장을 3번이나 역임하신 존경하는 선배 목사님이 계신다. 평소 나를 지극히 아끼고 내 진정성을 어느 면에서 이해하시기에 다음과 같은 사랑의 우려로 몇 마디 충고하시는 것을 듣는다.

“당신은 맹꽁이 같다.”
“혼자만 생각하지 말라. 아내와 어린 자녀들이 딸렸다. 그들은 어떡하려고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 총장님은 한편으로 ‘당신은 바탕이 좋고 기본이 되 있어...’ 라고 덕담도 주시며 현직에서 은퇴하셨기에 내가 살고 있는 곳에 가까이 와서 살고 싶다며 예전부터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빈집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친근한 분이다. 그런데 이 분만의 염려가 아니다. 이런 사정을 좀 아는 동기 목사님도, 심지어 우리 부모님까지도 등등... 내가 만나는 사람 열이면 열 모두에게서 듣는 한결같은 공통분모의 이야기임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목사로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내 자신의 미래에 대한 염려만큼은 지금까지 그다지 골몰하게 염려해 본적이 없다. 계산해 본 적도 없다.
그러니까 남을 비하하고 못난 자를 일컬어 지칭할 때 쓰는 대명사로서 맹꽁이라는 말을 듣는 게 당연해 보인다. 나아가 어찌 보면 대책 없고 한심할 따름이다. 그래도 나는 이런 말에 화가 나지 않는 것 보면 신기할 정도다. 왜냐하면 평소 의로운 분노를 가진 내가 이런 소리에는 끄떡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 잘 알려진 목사님이 ‘하나님은 교회에 관심하는 게 아니라 사람에게 관심한다.’라는 말에 동의하면서도 동시에 교회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교회를 사랑하고 관심하지 않는 사람이 건강하고 좋은 교인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직업은 몰라도 목회자는 적어도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뢰하고 하나님께 모든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있어서만큼은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평소의 입장이다. 이에 대한 근거를 주님이 염려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에서 하나님의 전적인 주도권을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는 명령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은퇴이후 어떤 삶이 내게 주어질지라도 지금 내가 하나님을 그렇게 신뢰하는 까닭에 내 전부를 드리며 의심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살지 않으리라고 이미 작정하고 있다. 아울러 결코 인간 편에서야 맹꽁이 같은 삶이었을지라도 가진 돈으로 추해지는 편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낫고 더더욱 영원한 영적세계에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하늘의 소망을 굳게 붙잡고 살아가는 한 하나님의 나라는 내 안에 이미 이루어졌으니 이보다 더 큰 저택이 어디 있고 이보다 더 큰 행복을 어디서 찾을 수 있으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