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오랫동안 모두에게 족쇄가 되어버린 "연급제"를 폐지할 수는 없을까?
너무도 오랫동안 모두에게 족쇄가 되어버린 "연급제"를 폐지할 수는 없을까?
  • 곽일석
  • 승인 2020.05.04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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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감리교회 갱신운동사의 과정에서 나타난 소위 "연급제"의 출생의 비밀

1970년대에 전개된 감리교회 갱신운동사는 특별한 의미를 갖게 합니다. 제 10회 총회에서 파쟁의 진통을 겪던 감리교회는 특별총회를 통해 감독 선거도 했고, 기구 개편도 했고, 장정 개정도 했습니다. 그러나 감리교회 안에 있는 파벌과 파쟁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에 뜻 있는 젊은 세력들이 규합하여 감리교회를 새롭게 하자는 혁신 신풍운동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1970년 3월 1일, 380명의 이름으로 감리교회의 새 역사의 방향을 제시하는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그 주요 부분을 간추려 봅니다.

“우리는 어떠한 미명으로도 파벌과 지방색과 출신교 등을 운운하는 저속한 언동이나 조직 등을 배제하고 오직 화해의 복음만이 각광을 받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구현하기 위하여 감히 5개 항목의 표어를 내걸고 이를 믿음으로 선언한다.

1. 다원화된 교회 사명의 시대적 구현을 위하여 각자가 맡은바 책임을 완수한다.

2. 전통 있는 교회의 질서를 지속하기 위하여 기독자적 윤리를 준수한다.

3. 성별된 교회 재산을 확립하기 위하여 자주적 자세에서 성실히 봉사한다.

4. 예언자적 교회를 육성하기 위하여 능력 있는 선교와 교육을 실시한다.

5. 생동하는 교회를 확장하기 위하여 교회 신풍운동에 일치단결한다.

이상의 선언으로 1970년대의 한국 감리교회의 안정을 기하고 인적, 재정적 개발을 이룩하여 새로운 선교정책을 창안하고 이를 시행하여 새 역사 창조에 다 함께 참여한다.”

결국은 1971년 3월, 11회 총회의 부정을 규탄하며 인천 숭의교회에서 경기연회를 창설하고 분립해나갔습니다. 정동파는 경기연회에 동조했습니다. 1973년 4월 정동교회에서 장정개정을 위한 특별총회를 열었습니다. 여기서 윤창덕 감독은 당시 감리교회의 위기 상황을 몸에 맞지 않아 ‘찢어질 처지에 처한 의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알렸습니다.

“감리교회는 9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에 우리 감리교회가 250여 교회와 3개의 연회와 하나의 감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연중 40여 년 동안에 우리 감리교회는 크게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에는 교회의 수가 1,500여 교회, 교인의 수가 33만여 명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회도(40년 전과 같이) 세 연회, 감독도 그대로 한 사람의 감독을 가지고 있게 되었으며 마치 세 살 때에 입던 의복을 30세 된 때에도 그대로 입으려고 하는 데서 생기는 무리한 일과 같은 일 등이 우리 교단에서도 있는 것입니다. 30세라는 청년은 30세의 청년이 입을 수 있는 의복을 만들어 입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 의복은 찢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 때 장정개정위원회가 제시한 개정 기본방침은 “총리사 (감독)는 제 12회 총회 때에 3~4명을 선거하여 총리사회를 조직하고 1년씩 윤번제로 의장이 되고 총리사 중에서 재단이사장 각국 위원회 위원장 신학교 이사장직을 각각 분담케 한다.”, “중앙집권제를 지양하고 개체 교회 중심으로 연회와 지방 분권제를 실시토록 모든 기구를 개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날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소위 호헌파, 성화파, 정동파 등 지연 중심의 정파로 갈라져, 고질적 병폐인 파벌투쟁 및 교권 안배주의 등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놓고 심각한 갈등과 분열을 노출하였습니다. 이렇게 분립하였던 갱신총회는 1978년 가을 합동 총회를 열고, 감리교회의 제도와 구조와 관련하여 4개의 중요한 원칙을 결의하게 됩니다. 완전 다원감독제, 총대선출의 단순화, 개체교회 중심주의, 본부기구의 전문화 등입니다.

가장 중요한 관심은 완전 다원화 감독제를 채택하므로 권력집중형의 4년 전임 1인감독제를 폐지하고 권력분산형의 2년 겸임 다원 감독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감독회장은 연회 감독들 중에서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총회 대표 선출의 단순화를 꾀하게 되는데, 정회원 목사 10년 급 이상과 이에 상응하는 평신도의 수로 정했는데, 이것은 연회에서 총대 선출을 놓고 치열하게 벌어졌던 정치 싸움을 끝내자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면적으로는 정치적인 타협의 산물들로, 연급제는 모든 것을 서열화하는 족쇄가 되어, 감독선거를 비롯하여 지방회 감리사, 임원, 평신도 기관장 선출에 이르기까지, 연급을 최우선 순위로 하는 규범이 고착화 되었습니다. 아무튼 불 일듯 일어났던 1970년대에 전개된 감리교회 갱신운동사의 과정은,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감리교회의 미래 준비를 위한 심원한 통찰을 제공하기에, 소위 "연급제"의 출생의 비밀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소위 "연급제"라는 수직적이고 종속적인 구조 안에 갇혀서 아파하며 오랫동안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잘못된 구조 안에 갇혀서 아예 젊은이들의 역할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단적으로 감리교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제도적인 병폐에 대하여 실제적으로 개선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연급을 기준으로 특정인들에게 집중되는 총회대표 선출 문제에 기인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총회대표 선출의 문제는 현행 ‘연급순’으로 총대를 선출하는 관행을 넘어서서 ‘연령별, 성별, 전문성'을 고려하여 연회별, 지방별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선출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감리교회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개혁 과제가 "총대제도를 뜯어 고치는 일”이라면, 또 한 가지는 "연급제 폐지"를 통하여 조직의 구조를 대대적으로 혁신하는 일일 것입니다. 향후 우리 감리교회 안에 또 다른 방편으로 개혁을 위한 운동이 전개된다면, "연급제 폐지"라는 보다 적극적이고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대응하므로, 현재의 감리교회 정치 구조를 정면 돌파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생명력이 넘치는 감리교회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너무도 오랫동안 모두에게 족쇄가 되어버린 "연급제"를 전향적으로 폐지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감리교회의 미래와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는 단초가 되리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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