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 한국 기독교를 돌아보며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 한국 기독교를 돌아보며
  • KMC뉴스
  • 승인 2020.04.1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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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일본인 학자, 오구라 기조가 쓴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 사회를 분석한다. 그의 분석의 도구는 '유교'이다. 특별히 성리학의 틀로 한국 사회를 분석한다. 그의 분석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순간들이 많다.

성리학이란 '리(理)'를 세상의 '보편적 원리'로 보는 이론 체계이다. 이는 마치 플라톤이 주장한, 서구사회의 '이데아'와 비슷하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리는 천(天), 즉 자연의 법칙과 인간 사회의 도덕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된, 아니 일치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절대적 규범이다"(20쪽).

도덕은 바로 이 '리'의 성취이다. 도덕적인 사람은 '리'의 성취를 잘 이루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인은 '도덕지향적'이다. 한국에서 권력과 부를 누리는 계층은 '도덕'을 갖춘 사람, 즉 '리'를 이룬 사람이 차지한다. 그래서 한국 사회는 '도덕 쟁탈전'이 살벌하게 벌어지는 사회이다.

도덕 쟁탈전은 '리'의 쟁탈전이다. 누가 '보편적'인가를 놓아두고 싸운다. 다른 말로 해서, 누가 '옳은가'를 두고 싸운다. 싸우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건다.

한국인의 '상승'의 열망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리'를 많이 쌓은 사람이 '리'를 적게 쌓은 사람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는 '리'를 얼마나 많이 쌓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나와 동일한 '리'를 지닌 사람은 '나와 너'의 관계가 되고, 나보다 '리'를 많이 쌓은 사람에게는 '님'이라는 호칭을 붙이며, 나보다 '리'가 낮은 사람에게는 '놈'이라는 호칭을 붙인다. 그래서, 한국사회는 '놈'에서 '나와 너'를 거쳐 '님'으로 상승하고자 하는 욕구가 충만한 사회인 것이다. (학벌이나 좋은 직업, 또한 부를 쌓는데 혈안인 이유가 모두 여기에 있다. 이러한 것들이 상대방보다 '리'를 높이 쌓는 방편들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한국 사회는 '배움(학벌)'이 '리'를 높이 쌓는 중요한 방법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여기서 재밌는 사실 한 가지가 있다. '놈-나-님'은 그래도 '리'라고 하는 범주 안에서 '우리'의 호칭을 갖는다. 아무리 '놈'이어도 '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우리'라는 범주 안에 들어온다. 그런데, '우리'라는 범주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부류가 있다. 그들을 일컬어 '남'이라고 한다. '남'은 '리'가 없는 부류로서, 인간 취급 자체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오랑캐가 대표적). 그들은 사라져야 할 존재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벌레 같은 존재이다.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부인이 남편을 너무 존경하고 사랑하면, '남편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대등한 존재에서는 그냥 '남편'이라고 한다. 그러다, 남편이 본인 마음에 안 들거나 '리'에 있어 자신보다 못하다 생각되는 순간, 남편에 '놈'자가 붙어 '남편놈'이 된다. 그러다, '우리'의 범주에 들어올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하면, '남'이 되는 것이다.

또한 한국인은 '도덕/리'를 매우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한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재능이나 기술, 또는 능력을 보지 않는다. 상대방이 아무리 재능과 기술이 뛰어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보기에 '리'가 없으면, 그냥 '싸가지' 없는 인간이 되고 만다. 그래서 한국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 '싸가지', 즉 '도덕/리'인 것이다.

한국 사람에게 '공동체'라는 것은 같은 '리의 원리'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공동체 안에는 '리와 기'의 원리에 따라 '질서'가 부여된다. 그 질서를 잘 지키면, 그는 '우리'가 된다. 한국 사람들은 그 '우리'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편안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라는 범주에 머물기 위해서 '질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질서를 깨는 사람은 미움을 받는데, 질서를 깨는 순간 그 사람은 '남'이 되어 공동체 밖으로 쫓겨나게 된다. (부장님이 설렁탕 먹으면 부하 직원들은 모두 설렁탕 먹어야 한다. 갈비탕 먹는 '놈'은 역적이 된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 '카르텔'을 형성해온 가장 보편적인 말이다. 우리는 '남'이 아니다. 우리는 같은 '리', 즉 같은 질서 안에 존재하는 사람,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것을 지향하며, 같은 것을 나누어 먹는 사이이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살고 같이 죽는다.

한국 기독교를 걱정하는 한 사람으로서, 한국 기독교가 왜 이렇게 배타적인지 생각하게 된다. 성리학과 기독교가 만나게 되면, '보편적 원리'에 대한 폭발적 반응이 생겨나는 것 같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후, 교회의 보편성을 강조해 온 탓에, 게다가 플라톤의 보편성의 철학이 기독교 사상에 유입된 탓에, '보편성'은 기독교 복음의 중심인 것처럼 여겨져 왔다. '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은 기독교 복음의 보편성에 쉽게 동화된 듯싶다. 그러면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남이가?"를 공유하게 되고, 같은 신앙을 공유하지 않는 '타자'를 '남'이라 부르며, 그들을 향하여 너무도 손쉽고 마음 편하게 '배제와 혐오'를 뿜어 내게 된 듯싶다.

현재 한국 '보수' 기독교의 그 못된 습성을 고치려면, 우선 한국 고유의 성리학적 세계관에 대한 고찰과 반성이 먼저 필요해 보인다. 그런 후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보편성'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기독교는 적어도 '우리와 남'을 가르지 않는다. 십자가 위에서 '막힌 담(우리와 남)'을 허무셨다고 고백하는 기독교가 왜 이렇게 '배제와 혐오'를 조장하는 '삼류 종교'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지, 통렬한 마음으로 돌아봐야 할 것이다.

장준식 목사 (미국 실리콘밸리 세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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