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에 넘어지지 말고 넘어가라
역병에 넘어지지 말고 넘어가라
  • 민돈원
  • 승인 2020.04.07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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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유, 초, 중, 고, 대학 등의 개학이 수차례 번복하며 이번에도 연기되었다. 모든 대중 연합 행사는 대부분 자진 취소되고 있다. 더욱이 이미 2월말부터 교회예배까지 멈추는 불똥이 튀었다. 적지 않은 교회가 예배를 고수하자 몇몇 지목한 교회에 대해 방송, 언론들은 일제히 '예배강행'이라며 교회 때리기를 매주 보도했다. 그러더니만 급기야는 일개 행정기관에서 예배금지 명령까지 내리는 전면전을 선포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도 무풍지대가 있어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4.15 총선이 그것이다. 총선 연기에 대한 보도는 한마디도 없고, 그런 기사를 본 적이 없다. 국민 대표라고 낙관해서일까? 300여명 위해 임전무퇴 자세다. 총선 투표하는 전국의 한정된 공간은 확진 위험 없는 최적의 안전지대이고 면역지대라 확신해서일까? 아니면 표심 때문일까? 이런 걸 두고 강행이라고 해야 어울릴 법 하다.

이 땅에 세워진 교회는 이 사회의 가늠자요, 바로미터와 같다. 따라서 교회가 건강하면 이 사회도 건강하고 교회가 병들면 사회도 곳곳에서 병든 증상들이 나타난다. 이에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이럴 때 교회가 병든 사회를 치유하고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세간에 감염의 온상인 것처럼 곡해되어 온 교회가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자가진단과 함께 철저히 비본질적인 부패한 모습들에 대해 고통스럽지만 스스로 메스를 가해 영적 수술을 하여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한편 엊그제 서울 용산에 내한 공연중인 뮤지컬을 보던 관람객 8,600여명이 한번 보는데도 확진자 2명이 발생했다. 반면 다수 교회중에 수 만명, 수 천명이 주일예배를 드려왔는데도 1-2교회 외에는 확진자가 1명도 없었다. 어디가 안전한가? 그런데도 교회를 불신하고 있다.

다만 세간에 문제된 1-2교회도 최초 발단은 교회라고 할 수 없는 대구 경북의 신천지 사교 집단에서 시작된 수백명의 집단 발병 사태였고, 다른 하나는 성남 ‘은혜의 강 교회’에서의 수십명 발병은 예배드리면서 확진자가 생긴 것이 아니고 외부에서 확진자가 들어온 자들과의 접촉 감염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장기화 조짐이 되어가는 이 사태에 처한 한국교회는 최대한 감염예방 수칙을 준수하면서 예배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내가 담임하는 교회는 일체의 모든 예배를 종전과 같이 흐트러짐 없이 드리고 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함께 모여 기도하는 일이 집안에서 쫄고 있는 것보다 더 면역체계를 키우는 일이요 지금이라도 만시지탄이긴 하나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여 이 시대의 요구에 답할 심도 있고 진지한 결단을 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재난은 사단이 ‘넘어지라’고 만든 덫이나 올무가 아니다. 아직 어느 나라에서도 백신을 개발하지 못할 정도로 누구도 알 수 없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넘어가라’고 우리 앞에 놓인 장애물 경기와 같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시련의 과정을 겪고 있다.

지난 5주간의 사순절을 주님 지신 십자가의 고난을 몸소 체험하는 마음으로 금식과 특새로 지내왔다. 그러던 중 지난 4. 3(금) ‘십자가 도’라는 이런 착상을 주셨다.

⌜예수님 십자가 지는 진정성은 관객을 매료시키는 뛰어난 연기력으로도 되는 것도 아니요, 청중을 휘어잡는 중저음의 매력있는 목소리와 세련된 달변가의 설교로도 아니며, 탁월한 문학적 기교로 독자들의 감동을 자아내는 한 편의 짧은 싯구로 감상되어질 일이 아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우릴 위해 대속하신 십자가의 그 죽음을 어찌 뛰어난 대중적인 연기력으로 대신하여 흉내 낸다고 주님 위해 죽을 수 있는 자 누구이랴?

탁월한 목소리와 화려한 언어구사 능력을 겸비하여 주님 십자가의 고난을 감동적 멘트로 눈물을 자아냈다고 한들 정작 그런 달변가 모두가 주님의 눈물 가진 자라고 확신할 수 있으랴?

천부적인 글재주로 주님 십자가 지신 현장을 생생하게 감동적 드라마 대사를 각본한다고 한들 주님께서 지고가신 십자가를 그 손 하나라도 감히 못 박힐 자 얼마나 되랴?⌟

사순절 기간 주님 십자가를 묵상하며 내 자신이 평소 혹이나 사람에게 돋보이려 그 기교부리는 연극, 성대모사, 그리고 미사여구로 진정성 없는 강단, 빛나는 십자가 뿐 초라한 예배당으로 전락할 한국 교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심난함에 지난 주 스스로에게 물어본 질문들이다.

이미 우리 곁에는 겨우내 얼어붙어 죽은듯한 화초들과 나무들이 따스하게 찾아온 햇볕을 맞아들여 가지각색으로 마치 환하게 웃는 모습처럼 꽃들을 선사하고 있다. 이처럼 어찌 십자가 없이 부활이 있으랴? 이 땅은 봄이 왔건만 대한민국은 물론 온 세계가 언제 끝날 줄 모르는 전염병으로 두려워 떠느라 봄의 활기찬 기운을 만끽할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나 부활의 감격과 소망은 이 역병으로 묶일 수 없고 억제할 수 없으리라.

이에 금년 부활의 봄은 그 어느 때보다 고난이 컸던 것만큼 부활의 감격 역시도 더 큰 감격으로 다가올 것이라 믿는다, 단, 한국 교회가 내외적으로 봉착한 압박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합리적 구실을 거부한 영적 지도자의 중심 있는 결단과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한에 있어서 세상 앞에 무릎 꿇는 교회가 아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담대한 교회가 어떠했는지를 증거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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