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 이야기의 시작
큰나무 이야기의 시작
  • 이형연
  • 승인 2020.03.25 2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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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어디쯤에서 시작됐다는 감기 바이러스가 일으킨 파장으로 세상이 요란하다. 시골구석에 붙박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에게까지 연일 경고 메시지가 전달되어 위기감을 넘어 적잖은 걱정으로 다가섰다. 뉴스로 접하는 소식은 걱정 수준이 아니라 공포에 가깝다. 숫자로 표시된 죽은 자들의 수가 매일 앞자리 갈아치우며 가파르게 상승하고 방역 당국의 모습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모임은 취소되고 가까운 친구도 인위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 배려가 되어버렸고 어딜 가든 면 대 면이 아닌 마스크 너머 가려진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사람이 말로만 의사가 전달되는 것이 아닌데 가려진 얼굴은 소통의 큰 축을 상실하여 활자처럼 메마른 삶을 인생에게 강요한다. 화면의 숫자보다 가려진 인간의 얼굴이 더 두렵고 우울한 것이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결벽증을 지닌 자처럼 연일 알코올로 손을 닦아내고 환절기 코가 간질거려도 시원스레 재채기도 못하고 방역 당국이 제시한 마스크 쓰기를 하지 않은 것은 사회적 중죄가 되어 가고 있다. 사회는 법과 원칙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데 새로나타난 감기 때문에 사회가 혹여 배려와 용납의 정서를 잃는 내상을 입어 감기 후유증보다 심각한 사회적 질고로 이어지고 만성으로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전조로 비쳐지는 일련의 보도는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정서적 지반을 딛고 서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정 지역의 집단발병은 지역적 오명과 거리두기를 낳고 특정 집단은 혐오의 대상이 되고 발생 된 개인은 사회적 죽음에 가까운 곤욕을 치러야 한다. 이것은 의료적 격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집단과 개인이 지역과 나라가 인종과 인종이 의식의 격리를 만들고 심리적 내면에 잠자고 있는 야만을 깨우고 인류가 이미 겪었던 불운한 역사의 회귀를 의미할 수 있다. 우리는 질병의 확산을 막는 일에만 집중해서는 오늘의 전쟁에서 승리자로 설 수 없다. 자신과 사회의 내면을 살피고 반성하는 지혜가 요청된다. 이것은 각자가 독립된 인격인 동시에 유기적으로 연결된 존재라는 인식의 전환이다.

아울러 ‘인간이 과학의 문명을 소유하고 발전시키는 것으로만 행복할 수 없다’라는 발견이 필요하다. 이참에 타인의 존재가 내 눈에 들어오는 사건들이 도처에서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들을 갖는다. 깊은 상처만 남기고 얻을 것 없는 전쟁은 의미가 없다. 질병으로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고 오랜 회복의 시간을 필요하겠지만, 도리어 개인이나 사회적으로 인격이 성숙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영의 시간을 앞당기는 계기로 만들 수 있다. 우리의 변화된 사회적 눈이 가장 먼저 바라봐야 할 대상은 사회적 약자이다. 사회가 어려워지면 고통의 한가운데로 내몰리기 쉬운 계층은 가난한 이들이다. 혹여 이들에게 질고라도 찾아들면 이들의 삶은 곧바로 패닉 상태로 빠지고 만다. 경제적 불편을 삶 전체로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 이들이 질고가 가중되면 버티기 어렵다. 할 수만 있다면 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의 혜택이 주어지고 위기를 인한 소외의 가중이 없어야 할 것이다. 경제의 어려움은 부자와 가난한 자의 선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고 어려움의 깊이가 깊어지면 삶이 무너지고 인격이 땅에 떨어지고 기본적 질서가 붕괴되어 진다. 우리는 이들과 늘 함께 있다. 이들은 격리의 대상이 아니라 삶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야 할 이웃들이다.

사람에게 질고의 자리는 반성의 자리이다. 이웃과 함께하지 못하고 그들을 배려하거나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시간의 반성과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귀함을 함부로 하고 그분의 길 위에 자신의 삶을 두지 않은 모든 것들을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들 위에 다시금 임하도록 하나님께 자신을 개방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신의 형상이 부여된 인간이 여타의 생명들이 누리지 못하는 가장 아름다운 축복은 섬김과 사랑이다. 이것은 사람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가장 크고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마당가의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피워 봄이 왔다고 말을 건넨다. 산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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