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케 하는 세 사람
불통케 하는 세 사람
  • 이구영
  • 승인 2020.01.17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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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형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복 주시기를 원하시고, 번성케, 창대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많은 도울 자를 보내주시고, 아이디어도 주시고, 성실함과 실력도 허락해주십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조건이 다 갖추어져 있다 하여도 때로는 불통케 되어 낭패를 볼 때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시편 1편은 우리들을 힘들게, 어렵게, 불통케 하는 세 종류의 사람을 이야기 합니다.

1. 악인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인들은 인본주의자들, 곧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시 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이런 악인들의 꾀에 넘어가면 불통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은 불통케 됩니다.
창세기 28장에 보면 길 떠나는 야곱을 향한 아버지 이삭과 리브가의 부탁이 나옵니다.
[창 28:1]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먼 길 떠나는 야곱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할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이삭이었다면 리브가 이었다면 길 떠나는 야곱에게 무엇이라 부탁하셨겠습니까? 군대 가는 아들에게, 시집가는 딸에게, 유학 가는 자녀들에게, 먼 길 떠나는 자녀들에게 무엇이라고 당부하시겠어요? 건강 조심하라고, 밥 굶지 말라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시댁식구들하고 잘 지내라고.. 그런데 성경에 보면 당연히 해야 할 이런 말들은 이삭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아주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가나안 사람의 딸들, 가나안 여자를 사귀지 말라고! 왜 그랬을까요? 믿음의 사람 이삭은 복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답게 이삭은 복에 대하여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 부탁합니다. 나는 네가 형통한 사람,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을 수 있는 번성한 사람, 창대케 되는 사람이 되게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네가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고 절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의 말을 따르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 죄인들입니다.

악인과 죄인이 어떻게 다를까요? 같은 단어인데 반복을 피하기 위해서 다른 단어를 쓴 것 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설득력 있는 주장에 동의가 됩니다. 악인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의 존재조차를 부인하면서 나 중심적으로 욕심 것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가르칩니다. 반면에 죄인은 교회 안에 있는 불신자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는 나오는데, 믿음은 있는 것 같은데 삶이 바쳐지지 않는 사람들! 그들을 성경은 죄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성경에 나와 있는 죄인들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바울 목사님은 갈라디아교회를 향하여 엄청난 질책을 퍼부었습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사람을 흉내 내며 세상의 것들을 누리려드는 양다리 걸치는 사람들을 저주하고 계셨습니다.
[갈 5:19-21]
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하나하나 죄목을 적어 내려가는데 이 죄는 예수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만 짓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짓고 있는 죄를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믿음 있는 척 하지만 믿음 없이 사는 사람들! 성경은 그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형통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믿음대로 살아가려고 할 때 그곳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른 형통이 있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오만한 자입니다.

여기서 ‘오만한 자’ 로 번역된 히브리어 ‘레침’ 의 원형 ‘루츠’ 는 본래 입을 삐쭉거리는 모양을 나타내는 단어로, ‘조롱하다’라는 의미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박수쳐야 하는 순간에 끌어내리고 싶고, 욕하고 싶고, 다른 사람의 형통과 번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요즘 부쩍 이나 적폐라는 단어는 자주 씁니다. 오랜 세월 쌓여 있는 폐단들, 나쁜 것들, 찌든 때 묵은 때를 청산하자고! 참 좋은 말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 공로가 없어져가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됨을 알아야 합니다. 이승만 정부시절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모든 것이 다 잘못이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없습니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하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칭찬할 것은 칭찬하고 나무랄 것은 나무라야 합니다. 오만한 자들의 문제는 뭐냐면 칭찬할 것도 일단 욕으로 시작합니다. 비난과 무시! 끌어내리려고 하는 것은 엄연한 죄악입니다. 야당이 무조건 여당과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비하하는 것도 오만이요. 여당이나 대통령이 과거의 모든 것들을 적폐로 몰아 평가 절하하는 것도 오만입니다.

박수를 칠지 모르는 사람들! 교회 안에도 있습니다. 앞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꺽고 비난은 하지만 막상 나는 그 자리에 설 수 없는 사람들! 무능력하기에 더욱 더 오만이 심해지고 모든 사람들을 무시하며 스스로의 배만 위하며 사는 사람들! 오만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형통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형통과 불통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의 형통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불통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지목하셨습니다. 근처에도 가지 말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면서 형통의 복을 누리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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