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지켜드려 죄송해요
못 지켜드려 죄송해요
  • 민돈원
  • 승인 2019.12.24 0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는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로 304명의 희생자들에 대해 회자되던 말이 있었다. 그것은 ‘...엄마가, 아빠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라는 애통이었다. 기울어져가는 배 앞에 책임실종에 대한 실망과 함께 그 점점 침몰해 가는 배를 보면서도 발만 동동 구르고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무력감의 절규였다. 비단 희생자를 둔 부모만이 아니다. 그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온 국민의 동일한 외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인간은 누구든지 자신을 지켜주며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파해 주고 웃고 울어주는 친구를 가까이 두었을 때 힘을 얻고 소망을 갖게 된다.

예컨대 치열한 전쟁터에서 전우애를 발휘하여 동료를 지켜주는 희생적인 전우야말로 그 무엇에다 비하랴? 그런가 하면 어처구니없는 봉변을 당할 때 아무 연고도 없고 알지도 못한 생면부지의 사람이 기사도정신을 발휘하여 그런 위기와 낭패에서 보호하고 건져내 줄 때 그 의리를 어찌 잊을 수 있으랴?

하지만 목적쟁취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칙과 규칙도 양심도 질서도 권위도 송두리째 부인하는 공존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일방통행을 일삼는 자들이 다수의 세력을 등에 업고 편향적 시각에 길들여진 게토화된 수구적 세력들이 헤게모니를 주장하기도 하는 각박하고 이기적이고 저돌적인 시대이다.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와서 심문을 하는 중에 헤롯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모인 종교재판에서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는 서로 친구가 되니라.”(눅23:12)는 말씀이 21세기 교회에도 여전히 재연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위에서 이런 질서를 어지럽히는 수구적 기득권 세력과 맞서 싸우려다 수욕을 당하면서도 의의 절개를 지닌 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시대에 희망의 불씨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이리라.

목회를 하면서 나는 가끔 이와 같은 분들을 보아왔고 내 주위에도 멀리서 가까이서 그런 분들이 남아 있음에 감사한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인간적으로 맺은 정이 결코 아니다. 혈연도 지연도 아니고 학연도 아니다. 동호회에서 만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직 복음의 능력에 사로잡혀서 여기에 올인한 나의 진정성을 공감하는 분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공통분모이다. 처음에는 주위의 여론몰이에 오해하던 분들도 나중에는 나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제대로 된 훈련과 사심없는 대화를 나누는 중 나의 순전함을 이해한 이후에 결국 그들은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모함과 수모를 겪는 소수 편에 도리어 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어느 날 야누스 같은 표정과 말, 비류들의 저속어로 아무렇게나 내지른 참으로 입에 담기 힘들고 글로써 차마 표현하기 힘든 장면을 당하는 모습을 본 곳은 신성한 곳이었다. 이를 생생하게 본 그들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절규에 가까운 고백을 이렇게 건넸다.

‘목사님,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를 연이으며 하염없는 눈물을 쏟아냈다.

똑같은 일을 두 번씩이나 목격한 또 어떤 젊은이는 지난 초저녁 수 십 분이 흘러도 통곡을 멈추지 않으며 눈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와 함께 통곡했다.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목사로서 나의 무력감에 자책했다. 다만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너희에게는 잘못이 없어. 기성세대인 우리가 너희에게 희망을 보여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평소 앙숙이던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는 서로 친구가 되니라. 는 말씀이 지난 몇 년간 목회현장에서 내 마음의 귀에 역력하게 들려오기만 한다. 이런 교회는 무너뜨려야 한다. 원수라도 친구가 되는 건 칭찬할 일이다. 그러나 헤롯과 빌라도는 악의의 목적에 친구였으니 엄밀히 말해 반역을 이룬 공모요 협잡꾼들이다. 그러므로 어떤 친구가 되는가이다. 어떤 성도가 되는가이다. 어떤 금식과 기도를 하는가이다. 어떤 목적을 가진 예배드리는가이다. 그리고 새로 건설해야 한다. 그 때에 비로소 주님이 세우시는 ‘내 교회’가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