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하니 해결의 실마리가 열린다
아파하니 해결의 실마리가 열린다
  • 민돈원
  • 승인 2019.12.17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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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 현재 교회에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이다. 예배당에 들어오는 문을 열다 신고식을 톡톡히 하게 된 일이 있다. 그것은 손가락이 멍이 드는 신고식이었다. 사연인즉슨 당시 현관문이 밖에서 강화문을 1차로 열고 들어오면 안에 좌우로 여닫는 오래 된 샷시문이 있었다. 이 문을 열다 그만 손가락이 그 속에 끼게 됨으로써 피멍이 들어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이후로 이 문을 열고 들어 온 성도들 가운데 나와 같이 피해당한 분들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서 피해의식에 머물지 않고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문제가 된 문을 해결할 방안을 궁리하게 되었다. 그러다 떠 오른 생각이 샷시문을 완전히 철거하고 자동문을 교체하면 되겠다는 좋은 착상이었다. 자동문으로 교체하면 사람이 들어올 때 센서가 감지하여 작동함으로 손을 터치 하지 않고도 출입할 수 있는 매우 세련된 문이 되기에 미관상으로도 안전성에도 교회 정서상으로도 여러 가지 장점이 많았다.

이렇게 해서 곧 바로 이 일을 위해 2-3군데 업체에 견적을 의뢰한 결과 한 업체를 선정하여 만족할만한 자동문으로 교체가 되어 지금까지 고장 없이 잘 사용하고 있다.

지내오면서 이런 생각을 다시 해본다. 내가 받은 피해를 또한 누군가가 당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나서 이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발전시키고 이것을 다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실행에 옮기려는 노력이 교회는 물론 이 사회공동체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하는 사람들 중 이런 마인드를 가진 분들이 많을 때 그 교회나 사회는 발전될 것이라고 말이다. 반대로 피해당한 것만 계속 생각하고 누군가를, 나아가 교회를 원망하는 사람은 결국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아감으로써 자신에게도 유익이 되지 않고 그가 속한 곳은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오래전 서울에서 목회할 때 그 때 내가 부임하기 전에 어떤 교인이 교회 승합차를 타려다 발을 헛디뎌 삐게 되자 그 뒤로 교회를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므로 피해를 당하면 피해의식에 사로잡히지 말고 당사자가 되었건 누군가가 이런 사태를 듣거나 목격했을 때 그것을 해결하려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고 그리고 이에 대한 능동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교회는 이럴 때 때로는 자기 사재를 들여서라도 선 뜻 응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임원의 자격이 있다고 본다. 사회역시 이런 사람이 지도자로서의 자격 역량을 가진 자가 아닐까보다.

두 번째 문제의식을 해결의 실마리로 바꾼 역사적인 사건이 있다. 화장실 문제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예컨대 수 십 년간 익숙하게 길들여 사용하거나 보게 되다보면 그것이 낡고 흉할지라도 시정하려는 노력을 잃은 채 살아가려는 습성이 있다. 내가 교회에 부임했을 때 적잖게 놀란 것은 사택 입구에 있는 다 깨지고 누런 소변기와 악취가 나는 푸세식 화장실이 교회화장실의 전부였다. 이렇게 화장실이 방치된 상태였다. 불과 4년 전인 2016년 최근 일이다. 두 번째 긴급하고도 서둘러 공사해야 할 최우선 과제였다.

여기에 유아가 있는데도 유아실이 없어 애를 데리고 온 자모들이 수유하거나 어디 머물 수 없는 안타까운 한계성이었다. 이 두 가지 공사를 곧 이어 다시 시행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교인들의 불편함, 더군다나 이곳에 모처럼 예배드리러 오는 외부 손님들이 그런 화장실을 볼 때 교회를 향한 이미지를 깊이 생각하다보니 도저히 지체할 수 없었다. 결국 적지않은 공사비가 투여되어 지금의 남 여 화장실과 샤워실까지 최신식으로 갖추게 되었다. 유아실도 마련되었다. 지금은 더러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마다 가장 먼저 교회 특징적인 아이콘으로 화장실을 꼽을 정도이다. 지방의 어느 목회자는 리모델링하면서 우리교회 화장실이 잘 지어졌다고 내, 외부 모습은 물론 내부 제품을 비롯 손잡이 하나까지 사진에 죄다 담아 자기교회 공사업자에게 제시하겠다고 한다. 문제를 잘 들여다보면 반드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법이다.

그리고 세 번째 피해는 지난해 9월 강단에 전도하는 분들에게 상을 주겠다고 해서 헬쓰용 자전거를 손수 조립하여 설치하려다 커터 칼에 오른손바닥을 1.5cm가량 크고 깊게 찢겨 119구급대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간 사고였다.

지금도 그 상처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면서 진열해 놓은 헬쓰 자전거를 볼 때마다 누구든지 전도해서 하루라도 먼저 상으로 받아가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고 내가 당한 상처에 진정으로 동참하는 성도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네 번째 지난 수요일 밤 당한 피해는 사택에서 예배당으로 오다 교육관 앞에서 넘어져 오른 쪽 종아리뼈에서 무릎까지 당하는 사고였다. 그날 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었다. 그러다보니 교회외부에 여기저기 널려 있는 시설물들 중에 바퀴달린 제설 삽이 교육관 앞에 어지러이 날렸던 것 같다. 컴컴했던 터라 그 앞에서 미처 그 제설 삽 장애물을 발견하지 못해 미끄러졌다. 들고 있던 성경책도 내동동이 쳐졌다. 그 순간 긴 막대가 다리 앞을 치게 되고 큰 찰과상을 입었다. 어깨도 짚으면서 오른 쪽이 3일간 통증이 심했는데 지금은 나은 상태이나 다리상처는 깊었는지 여전히 일주일 째 소독하고 약을 바르는데도 통증이 여전하고 염증이 가시지 않으며 진물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원인도 다름 아닌 주변이 이런 위험한 시설물들을 일정한 공간에 둘 창고가 없었기 때문이고 교회 전체적으로 어둡기 때문이다. 사실 피해의식을 곱씹으면 원망이 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성도들이 당하기 전 목사인 내가 차라리 피해당해 그래도 덜 원망을 면한 게 아닐까 스스로 위로해 본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대로 문제의식을 잘 처리하면 반드시 해결의 실마리가 있었고 새로운 건설이 있었던 실증적인 예가 반증이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고 역시 어쩌면 현재 교회가 오랜 역사만큼이나 제대로 시도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떠밀며 책임회피 하려는 자세를 극복하고 이런 아픔을 통해 진정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군가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여겨져 앞으로 반드시 시도해야 할 건축을 위한 지혜와 능동적인 자세로서의 책임의식을 가지고 목회자와 최선두에 선 임원들이 지체하지 말고 나서야 할 때라는 인지능력이 발휘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사건을 수용하고 싶다.

누구든지 그러겠지만 나는 피해의식이 아닌 문제의식으로, 나아가 부담이 될지라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제시하는 방법으로 지금까지 이 교회를 섬겨왔고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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