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떠난 동기목사 유족 위로예식
세상 떠난 동기목사 유족 위로예식
  • 민돈원
  • 승인 2019.12.03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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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마지막 주 M.Div신학교 동기 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무개 동기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였다. 아니 이럴 수가! 불과 2주일 전 총 동문회가 있었던 원주에서 만나 내 앞에서 같은 상에 앉아 저녁을 먹었던 동기였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그 동기 모습은 예전처럼 호탕하게 웃는 남자다운 기백도, 아울러 평소 동기들에게 경솔하다 할 정도로 가볍게 행동하기에 어떤 면에서는 분위기 메이커였던 전형적인 자태는 찾을 수 없었다. 대신 무표정한 그의 변화된 모습이 오히려 당황스러워 이 사실을 다른 동기에게 전하기도 했다. 원주 총동문회에서 보았던 그 시간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그 동기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사실 먼저 내 곁을 떠난 이 동기는 수 년 전 내가 동기회장을 맡았을 때 목회하던 교회에 모든 동기들을 위해 1박2일간 숙식일체를 기쁨으로 섬기려고 초청했을 때도 왔던 적이 있다. 지나간 일이라 전혀 생각은 나지 않지만 아무튼 대접하고도 나에게 무척 그 동기 기질대로 불쾌한 말을 했던 것 같다. 이에 그 시간부로 동기회장을 그만 하겠다고 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심상치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흘러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못했는데 그 당시 같이 참석하여 옆에서 들었던 동기 목사님이 오늘 전해준 바에 의하면 ‘민 목사님이 무례한 말을 한 동기목사를 용납하고 잘 참아 주셨다.’ 라고 말을 해주기에 그런 줄 알게 되었다.

그 동기가 세상을 떠난 한 주일 후 비록 어느 동기도 장례식을 참석하지 못했지만 한 주간이 지난 12. 2(월) 정오 서울에서 목회하는 동기교회에서 모일 수 있는 몇몇 동기들이 그를 추모하며 유족을 위한 위로예식을 드리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유족인 부인과 여동생이 함께 참석하도록 소식을 전하자 함께 참석하게 되었다. 나는 동기회장으로부터 설교 부탁을 제의 받았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런데 세상 떠난 동기와 미운정 고운정이 들었다고 할 수 있는 나에게 추도설교를 맡긴 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예사로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막10:21본문과 ‘한 가지 부족한 것’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말씀을 전하기 전 2주 전 그 힘들게 살아 온 동기모습을 떠올리며 전하다 말씀을 이어가지 못할 정도로 눈물이 앞을 가리었다. 겨우 진정하고 말씀을 전했다. ‘유대의 한 부자 관원이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느냐?’라고 주님 발 앞에 무릎 꿇으며 물을 정도로 그의 진지한 모습을 보였다. 더 나아가 어릴 때부터 5-10계명까지 주님이 제시한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할 정도로 그의 자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부자 관원, 그런 그에게 주님은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라고 문제를 제기하신다. 그리고 이어서 ‘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라고 말씀 하신다.

그러자 이 부자는 재물이 많아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여 떠나 버렸다. 부자 청년은 다 가진 것 같았지만 다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 본문을 중심으로 보면 세상은 크게 두 가지 사람으로 대변된다. 그 하나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지만 다 가진 것 같이 사는 사람이 있고, 다 가졌지만 이 부자관원처럼 다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살고 있는 사람이 있겠다. 라고 하는 관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왜 나는 목사가 되려고 그렇게 고민했던가? 그것은 다른 게 아니었다. 예수님 믿으면 부족함이 없다고 여겨졌고, 예수님이면 천하를 얻는 것 같았고, 그래서 예수님으로만 만족하고 살겠다는 확신이 넘쳐 났었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하게 되었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나의 영적 취약점이 되고 아킬레스건이 되어 있을 때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므로 영원한 하늘 보화를 잃어버리고 주님을 떠나 버리는 삶을 사느냐? 아니면 도리어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한 가지 부족한 것이라고 진단해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가슴을 후벼 파고 들어와 그 부분을 주님께 맡기거나 내 놓음으로써 보이지 않은 영원한 세계를 보게 되고 얻게 되는 삶을 사느냐? 이 갈등사이에서 누구를 불문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싶다.

부족한 것을 솔직히 드러내지 않고 그것을 감추려고 하면 허장성세로 흐르게 되어 주님이 안보이고 만다. 목회자를 비롯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믿는다고 할 때 특별히 스스로 경계해야 할 함정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예수그리스도를 잃어버리면 그렇지 않겠는가를 스스로에게 내 자신에게 던지는 그런 마음으로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남은 유족들에게도 함께 울면서 다소라도 전해주면서 갖는 마음은 동일했다. 또 다른 동기가 축도를 하는 순간 함께 모인 동기들과 유족들은 다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어 터트리고 말았다.

홀로 남은 사모는 이 예식에 참석하여 펑펑 울면서 나중에 몇 번이고 하는 말, ‘남편 동기 목사님들이 마련해 준 이 자리에 와서 지금까지 가슴이 막혀 답답했는데 확 뚫려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고백을 하였다. 그렇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웃는 자들과 함께 웃는 공감하는 사람이 진정한 내 형제이고 이웃임을 어느 때보다도 절감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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