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지 못한 죄
용서하지 못한 죄
  • KMC뉴스
  • 승인 2019.10.2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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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눅 6: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이것을 ‘쉬운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에 있는 작은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큰 통나무는 보지 못하느냐? “

‘영어성경 NIV '에는 ‘들보’가 plank 라고 나옵니다. 두꺼운 판자!

‘티’는 speck of sawdust 설탕에 묻은 점, 톱밥에 묻어 있는 점의 뜻입니다.

넌 어떻게 톱밥에 묻어 있는 작은 점 같은 네 형제의 실수는 보면서,

왜 네 눈 속에 있는 넓고 두꺼운 판자는 보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참 신기한 일은 은혜 받지 못하면 내 눈에 들은 통나무가 안 보입니다.

남의 눈에 있는 티 만 보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면 그 사람의 허물이 허물로 보이지를 않습니다.

참 묘한 영적인 체험입니다.

내 죄가 크게 보이면 다른 사람의 죄는 작아 보입니다.

반대로 내 죄가 작아 보이면 다른 사람의 죄는 커 보입니다.

그러므로 용서가 가능하려면 일단 내 죄를 크게 보는 믿음의 눈이 떠져야 하고,

내 삶을 하나님께 주관하신다는 믿음의 눈이 떠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가르침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마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는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때 죄가 남아 있으면 천국 못 갑니다. 그때 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때 죄를 없애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내게 죄 지은 사람들을 먼저 용서해주는 것입니다.

내게 죄 지은 자를 내가 용서할 때 그때 주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주심을 알아야 합니다.

죄 중에 아주 큰 죄가 있습니다. 바로 용서하지 못하는 죄입니다.

반면, 형통과 창성함의 비결이 있습니다. 용서하며 사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아들 요셉은 한을 품고 억울함을 품고 살만큼 힘든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형제들에게 배신당하고, 누명을 쓰고, 종살이, 옥살이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이제는 애굽의 국무총리에 올라있습니다.

말 한마디면, 자기를 힘들게 한 모든 이들을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런 보복의 인생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용서의 인생을 선택합니다.

어쩌면 잊어지지 않는 아픈 기억들을 기도하며 잊어나갔을 것입니다.

요즘으로 하면 성령님의 도우심 가운데 용서와 잊음의 삶을 이어나가는 것입니다.

힘든 날들을 지내던 요셉은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과 결혼을 합니다.

결혼할 때 요셉의 나이 서른 살입니다.

혈기 왕성하여 복수가 더 익숙한 나이입니다.

요셉은 아스낫과 사이에 두 아들을 얻었습니다.

이름을 지었습니다. 첫째가 므낫세요, 둘째가 에브라임입니다.

이름이 참 특이합니다.

첫째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했습니다. 이제 다 잊었다는 뜻입니다.

내 고난, 내 원한, 내 억울함, 내 분노 다 잊었다는 의미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내가 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잊으라 하셔서 잊었다는 뜻입니다.

내 신뢰하는 하나님! 내 삶의 근거가 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잊으라 하시니,

다 용서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첫째 아들을 부르면서 용서를 이어갑니다.

둘째를 낳았습니다.

이름을 에브라임이라고 지었습니다.

창성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용서하고 살았더니, 기억도 하지 않고 살았더니 창성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 용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용서했더니, 다 잊었더니 행복해지고, 창대케 되더라는 요셉의 고백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입니다.

보복과 갈등, 냉전과 다툼과 고성의 시대를 삽니다.

십자가에 달리셔서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기도가 생각납니다.

father forgive them!

내 죄를 크게 보면 용서가 쉽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면 용서가 쉽습니다.

나를 위해서라도 이웃을 용서할 때 하나님께서는 창성함을 선물로 허락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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